[죽음학 칼럼⑩]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불사의 약을 찾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던 중국의 진시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50에 세상을 뜨고 만다. 불사의 몸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복용했던 수은이 든 단약이 오히려 진시황의 사망을 재촉한 것으로 추정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고대 중국에서 불노장생을 이룰 수 있다고 알려졌던 선단, 양기보충법, 연단술과 방중술은 도교의 주요 자금 원천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고 한다. 죽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고대로부터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세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이었던 테니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티토노스는 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애인이다. 오로라는 인간인 티토노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제우스신을 찾아가 자신의 애인이 영원히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해 소원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늙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은 미처 하지 않은 결과, 티토노스는 불사의 몸은 되었지만 계속 늙어, 나중에는 차마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라이스(Anne Rice)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는 한 번 물려서 흡혈귀가 되면 물렸을 때의 나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게 된 뱀파이어는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자신의 불노장생을 저주하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을 부러워한다.    
 

 몇 년 전 방영된 영국 드라마 토치우드(Torchwood)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 아무도 죽지 않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 사람들은 사망자 0가 된 날을 기적의 날이라고 부르며 좋아하지만, 시간이 경과하자 이것이 축복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매일 30여 만 명이 사망해 왔는데, 그 날 이후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여전히 새 생명은 태어나니, 사흘이 지나자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죽지는 않아도 여전히 질병에는 걸렸기 때문에,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환자도 죽지 않으니 병상은 없고 의료진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또 사고로 신체가 끔찍하게 손상되어도 죽지 않고 생명은 붙어 있으므로 견뎌야 하는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한편 인구 폭발로 식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져서, 결국 4개월 뒤에는 사회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인류의 존속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른다. 물론 이 드라마는 가상의 세계를 그린 허구이지만, 사람이 죽지 않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잘 묘사하고 있다.
 

영화 그린 마일(Green mile)에서는 108세 노인이 교도소에서 간수로 일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살인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가 병을 치유하는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어, 뇌종양을 앓고 있는 교도소장 부인의 병을 치유하도록 주선해준다. 결국 사형수는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그 순간 영적 능력이 주인공인 간수에게 전해져 주인공은 오래 살게 된다. 그러나 노인이 된 주인공은 이것을 저주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100세 넘게 사는 동안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 그리고 친구들이 차례차례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빠지고, 자신이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 살게 될 것인지 한탄하며 밤을 지새운다. 그에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축복이 아닌 것이다.
 

2011년 7월 9일자 중앙일보에서는 영하 196도 속, 그들 과연 깨어날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냉동된 채 미래에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미국 미시간 주 냉동보존재단의 깊이 2m가 넘는 냉각기 안에 103구, 애리조나 주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는 104구의 시신이 보존되어 있다. 러시아 크리오러스에 보관된 시신까지 포함하면, 부활을 기다리는 냉동 시신은 223구에 달한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에틴거(Ettinger)가 인체 냉동보존술을 정립한 책 <냉동인간>을 완성한 해가 50여 년 전인 1961년이다. 에틴거는 2011년에 92세로 사망했는데, 그가 설립한 CI의 냉각기에 이미 보관돼 있던 어머니 그리고 두 아내의 시신과 함께 그 역시 냉동 보관되었다. 그는 생전에 이같이 말했다. 늙는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질병이지. 그래서 예방하고 치유하려는 것이야. 냉동인간을 깨어나게 하는 시점엔 질병과 상처를 치료하고 젊음까지 되돌리는 기술도 실현되겠지. 에틴거가 50년 전 주장한 냉동인간의 해동 과정은 단순하다. 호흡과 혈액이 순환되도록 한 뒤, 사망에 이르도록 한 심각한 질병을 치료하고 손상된 장기를 고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냉동→해동→소생의 과정이 가능한 것은 정자와 난자 같은  세포와 일부 조직, 배아 정도에 불과하다. 장기의 경우 저온 보관해 이식할 수 있지만, 냉동과 해동을 통해 이식된 예는 없다. 냉동과 해동 과정에서의 세포 손상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계의 부품을 갈아 끼우듯이 사람의 장기를 계속 교체하기만 하면 영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의 발상이 천진무구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인간이 3, 4백 년씩 살게 될 때 인류사회에 어떤 문제점이 생길지, 그리고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일지에 대해서 그들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미국의 정신과의사, 신학자이자 작가였던 스캇 펙은 자신의 강연을 들은 청중이 우리에게 무언가 인생의 은총 같은 게 있을까요?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우리 모두 죽게 된다는 점이죠. 인생을 끝낼 준비를 할 만큼 세상살이에 지친 건 아니지만,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을 3, 4백 년 더 헤치고 살아야 한다면 아마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털어서라도 일찌감치 죽는 쪽에 투자할 겁니다. 죽은 다음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냉동되어 있다가  미래에 해동되어 부활하기를 꿈꾸는 사람들과는 삶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은 우리 모두에겐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산 뒤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죠.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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