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기행]장수명/동화작가

▲ 그림/김품창.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다. 엄마가 낳았다.’

지아는 지민이 언니가 한 말을 되씹어 본다.

아홉 살, 지아가 이해하기란 너무 어렵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다, 엄마가 낳았다.’

지아는 제게 제가 자꾸만 묻고 있다.

“아버지의 아이는 아닌데, 엄마가 낳았다…”

지아는 제 입을 제 손으로 틀어막으며 헉 소릴 지른다.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지아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을 친다.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가 떨어졌는지 모른다. 현기증과 함께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그래서…’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처럼 미워하고…, 아버지가 때리던 일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지민이 언니의 차가운 얼굴도 생각난다.

아홉 살, 이지아는 알건 안다. 제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제가 살아가는 법을 익혀 온 지아다. 지아는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가누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이대로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아버지와 전화통화한 내용을 다 들은 제 모습을 틀키고 싶지 않았다. 지민이 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무서웠다. 지아에게 지민이 언니는 아빠처럼 두려운 존재였다.

지아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대문을 열고 나간다.

‘여기에 있다가는 들켜, 그건 안돼! 절대…’

마음에서 속삭인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이지아야.’

지아는 제 물음에 제가 답을 하며 어둠이 꽉꽉 채워진 골목길을 지나고, 블록공장을 지나쳐 달렸다.

‘바람의집’

철둑 옆에 있는 지아의 바람의집에 왔다. 깜깜한 밤에 오기는 처음이다. 슬픔과 두려움, 설움에 쌓였던 지아는 본부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트린다. 깡마른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운다.

바람도 우우소리를 내며 본부 깊숙이 들어와 구석구석을 채운다. 마치 바람도 지아를 따라서 우는 것 같다. 바람이 지아의 어깨에 매달려 귓속으로 들어와 웅웅 소리를 남긴다. 울다가 지친 지아가 바닥에 눕는다. 서럽다.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라서 눈에 띄기만 하면 커다란 막대든, 아버지의 뼈마디 굵은 주먹으로 든 마구 맞아야 했던 이유를 알지 못했던 그날그날이 가시나무처럼 지아의 살갖을 파고들었다.

“엉엉~, 엄마, 엄마~!”

지아는 생각난다.

늘 다정하고 따뜻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변해버린 그 날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 아버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먹고 들어오던 그날부터다, 아버지는 이유 없이 지아에게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물끄러미 그저 냉냉한 얼굴로 보고만 있던 지민이 언니의 표정도 생각났다.

밉다!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었고, 언니는, 언니가 아니었다. 지아는 서럽고, 무섭고, 몹시 미웠다.

‘모두 미워~! 이대로 죽어 버릴 거야. 죽을 거야.’

지아는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고 춥다. 반바지와 민소매의 옷을 입고 벽돌바닥에 누운 지아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위턱과 아래턱을 맞부딪힌다.

‘이렇게 죽자!’

아홉 살 아이의 생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서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정말,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날 용기도 언니들을 만날 용기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도 언니들도 너무 밉다. 지난 일 년 동안 지아가 겪은 고통과 공포를 어느 누구도 나눠가지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폭력을 언니들은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지아의 작은 입술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바람의집에 사는 바람아이.”

민호가 했던 말이 갑자기 가물가물 떠오른다. 정말 바람의 아이였으면…….

 

간밤에 아버지와 전화 하느라고 늦게 잔 지민이는 늦잠을 잤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아가 보이지 않았다. 이방, 저방, 화장실이며, 집안 곳곳을 찾아보았지만 지아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어디 간 걸까? 오늘 들어오면 혼 좀 내야지.’

지민이는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 지나고, 한 나절이 지나도 지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 종일 굶은 것 같았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언니, 지아 찾아봐야지 않아.”

“그래, 언니. 지아 어제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던데.”

세 자매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지아 친구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도 지아 친구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제야 너무 지아에게 무관심했던 자신들을 돌아보았다.

“지은아, 지아 방학동안 비상연락망표 어디 있지?”

“맞아. 비상연락망표!”

비상연락망표를 보고 모두 연락해보았지만, 지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없어.도대체 어디 간 거야?

“간밤에 집에 있기는 했던 거야?”

세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했지만 아무도 지아에 대해서 말을 자신할 수가 없었다.큰언니 지민인, 갑자기 사라진 지아에게 화가 났지만, 너무 무심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있을 때는 모르겠더니, 지아가 없으니까 집이 너무 휑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

지난밤에 아버지와 전화를 너무 오래 한 것 같았다. 일찍 잠든 지아가……, 혹시 그 시간에 일어나서 전화통화를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지아야, 아니야, 그건, 모두 사실이 아니야.’

하룻밤이 지났다.

지민이는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하루밤새 지민이 얼굴은 새까맣고 까칠했다.

날이 어스름히 밝아오지만, 지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