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칼럼⑪]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2013년 8월 22일 방영된 MBC 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마지막 회에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김자옥씨가 출연하여 한 사람의 자살이 가족에게 남기고 간 상처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런 자살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그는 수십 년 전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살기 싫다며 자살한 네 살 위의 언니를 가슴 아프게 회상하면서,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들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몇 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므로 치료를 받고 나아지도록 사회와 주위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국 생명의 전화 자료에서는 자살유가족이 겪는 감정의 흐름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1단계에서는 엄청난 충격으로 말도 안 돼(부인), 나는 왜 막지 못했나(무능력), 나를 버리고 가다니(버려진 느낌), OO 때문에 죽은 거야(비난)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 다음의 2단계에서는 나도 싫고 세상도 싫다(분노), 나 때문에 죽었어(죄책감), 자살자 집안이라고 남들이 욕하겠지(수치심)이다. 3단계에서는 대인 관계가 단절되고 우울증이 생기며 자살충동이 일반인의 80-300배에 이른다고 한다. 한 명이 자살할 경우 주위의 5-10명에게 자살 충동을 심어 준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듯 자살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사회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자살 사고에 대해서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보도해 왔고, 연예인 등 유명인이 자살하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이는 자살에 대한 외국 언론의 보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198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지하철에서 발생한 자살 사고를 보도한 이후로 이를 뒤따르는 자살이 급증했는데, 언론에서 자살 보도를 중지하자 자살자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한다. 즉, 자살 보도의 분량이 증가할수록 모방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자살 사실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데, 권총으로 자살한 경우 총기 사고로 인한 죽음이라고만 보도한다. 다만 다른 사람을 살해하고 자살한 경우는 예외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방법은 절대로 보도하면 안 되고 누가 사망했다는 사실만 보도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자살한 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자칫 어떻게 자살하면 되는지에 대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 자살자가 많은데, 다리에서 투신할 경우 두개골 손상, 골절상, 내장 파열 등으로 거의 98%가 사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살아남은 2%를 관찰한 결과, 팔 다리, 가슴, 어깨, 목, 머리 등의 부상 때문에 한 평생 고생을 하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감격스러워하며 새 인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2013년 9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가 구조된 어느 고등학생의  고백을 싣고 있다. 뛰어내리기 전, 다리 난간에 적혀 있는 보고 싶은 사람 있나요?라는 자살 예방 문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뛰어내리는 순간 아차 싶으면서 머릿속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그가 확인한 것은 살고 싶다는 의지가 죽고 싶다는 충동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구조되면서 한 말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어요.였다.
 

몸을 던진 곳이 강물이었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인데, 고층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경우에는 바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으므로 더욱 치명적이다. 또 건물에서 투신했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십 수 년 간 병상에 누워 있는 경우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 본인은 말 할 것도 없고 가족들이 겪어내야 하는 고통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심장이 멎고 숨을 안 쉬어 사망 판정을 받았으나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난 사람들 중 일부가 경험하는 근사체험자들 중,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살아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사람들이 자살 직후 품게 되는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의 책 <다시 산다는 것>에서, 아내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다가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미수에 그쳐 살아나게 된 한 남성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살 시도 직후 나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어요. 지독한 장소로 갔습니다. 그 즉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죠. 난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사체험자들은 보통 터널을 통과해 밝은 빛을 보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는 등의 긍정적이고 밝은 경험을 하는 데 비해, 자살미수자들의 근사체험은 이와는 다르게 깜깜한 공간에 혼자 고립돼 고립무원의 상태로 있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삶과 죽음의 전체 스펙트럼으로 볼 때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는, 죽음으로써 문제가 끝나거나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죽음은 소멸하는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다. 현재 살면서 쌓은 지혜와 노력의 합이 다음 생으로 이월되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어려움 역시 반드시 지나가기 마련이다.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윈스턴 처칠은 당신이 지금 타고 있는 기차가 불타는 지옥을 통과 중이라면 곧 지옥을 빠져 나올 테니 기차에서 뛰어 내리지 말고 계속 그 자리에 있으라.고 조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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