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 시인의 風景

요즘 들어 데드 존dead zone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휴대폰의 데드 존, 대서양의 데드 존, 뇌 속의 데드 존 등, 그 사용처도 다양하다. 데드존의 한자말인 사각지대(死角地帶)라는 용어도 신문지면의 단골이다. 안전 사각지대, 복지 사각지대, 주거 사각지대 등, 쓰임새가 보다 다각적(多角的)이다,


데드 존의 원 뜻은 운동 용어로서 볼이 들어가지 아니하는 네트 근처 지점을 의미한다. 한글권의 풀이는 협소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장소나 그런 시기, 중립 지역,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 물속에서 산소가 충분하지 않아 생물이 살 수 없는 지역 등, 좀 더 다양한 적용을 보여준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선점하는 탓에 데드 존의 기표적 느낌은 죽음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죽음이란 원래 생명의 고귀함을 증명하는 역설을 지닌다. 그 이미지는 피동적 주체를 파동시키며 폭력과 억압에 길항하는 희생과 부활을 논의케 한다.


4월의 길목이다.
 

온갖 꽃이며 행락객들이 알록달록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43 사건, 416 세월 호 참사. 419 민주혁명과 같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기억들이 데드 존으로 인도한다.


그 아픈 구역을 시인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눈동자 밖으로 돌출하는 그 이미지들을 시인은 시로 쓸 수밖에 없다. 은유의 힘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으로 한편의 시(詩)를 상재해본다.

당신의 여름을 폐간합니다 수습이 필요하면 봄은 남겨두기로 하죠, 제주행 비행기를 탄 날, 폭설을 만났네

스팸메일처럼 한 방향으로 몰아치는 눈보라, 내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기내(機內)에서 탑승할 수 없는 메일을 읽은 마음이 쓰러진 울타리네

가을이 오기 전에 여름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들리는 건 다만 그 얘기뿐인데 축생을 가두어 기르는 울타리는 높은 지위에 오르고 지상의 내릴 곳은 보이지 않네

온실 속의 꽃들은 어떡하나, 이미 청탁한 봄을 철회해야 하나, 몇 권의 봄을 궁리해온 사람들은 하느님을 외치네

난분분한 혓바닥으로 미쳐 날뛰는 바람과 함부로 돌아다니는 눈의 속살을 설명할 길이 없네 잔치를 향한 신탁의 기도는 멀고 눈에 갇힌 시간을 논의할 지면은 보이지 않네

멀고먼 아마존, 섬광이 번쩍이는 밀림에선 폐간되는 나무들로 죽은 언어가 쌓인다는데 나무가 떨군 활자며 문장을 어떤 눈이 먼저 수록했나

꽃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 나무의 모양을 원하면서도 도끼날이 박힌 나무의 실상을 몰랐던 눈의 오독이 비행기 날개처럼 벌목지대로 돌아가네

지상의 어떤 나무에게도 목숨 내건 봄이 있었네 봄이라는 혁신호가 있었네 마른 수피에 새 살이 돋는 것이 혁신이라면
그대여, 정치도 역사도 어떤 학문도 구태의연한 페이지는 폐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그대에게 보낸 봄을 철회하네 눈 덮인 모든 지경을 첫 페이지로 삼아주시게 아직 싹 트지 않은 봄의 순결한 발자국을 찾아주시게

무성한 나무 그늘이 이파리를 다 떨군다 해도 나는 브라질호두나무 아래서 책을 읽고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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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데드 존> 전문

이 시 속에서 표상되는 것은 폭력적 사태에 대한 자연의 존폐위기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 인위적인 폭력에 항거하는 자연적 존재들은 잎을 틔우고 성장하면서 혁신의 봄을 마련한다. 불가능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그것은 정치도 역사도 어떤 학문도 구태의연한 페이지를 폐해야 한다는 인간 사회의 절박감이라고 할 수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추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고 노래한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4월을 마냥 잔인한 계절로만 노래할 수는 없다.
 

봄비가 암울한 지상을 촉촉이 적시며 새 생명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계절의 폭설을 뚫고 이제 막 고개를 내밀고 있는 팽나무 싹들은 만물의 상생과 화합을 부르는 4월의 시그널이다. 
 

413 총선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4월은 이제 과거의 행적과 미래의 비전을 어떻게 소통시키느냐에 따라 계절의 여왕인 신록의 5월을 예감해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싹 트지 않은 봄의 순결한 발자국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지상의 어떤 나무에게도 목숨 내건 봄이 있듯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변환되는 4월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아프지만 힘차게 호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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