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곳저곳에서 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됐다. 하지만 인지부조화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 인지부조화의 작동원리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 『거짓말의 진화』가 그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지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안한 이론이다. 인지부조화는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 즉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드는 에너지”다. 대개의 경우, 내가 믿어온 것이 사실과 다를 때 잘못된 믿음을 버리는 쪽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도록 만드는 경향을 일컫는다.
흡연자의 예가 대표적이다. “‘나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흡연은 어리석은 짓이다‘와 ’나는 하루 두갑을 피운다‘처럼 심리적으로 상반하는 두 가지 인지요소(신념,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하는 긴장상태이고(…)사람은 부조화를 해소하기 전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흡연자가 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흡연이 해롭지 않다‘, ’긴장 해소에 도움이 된다‘ 등의 구실을 들어 흡연에 대한 부작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자기기만이기는 하지만 대다수 흡연자들은 그러한 영악한 방법으로 부조화를 해소한다.”
담배의 예를 보면 대수롭지 않은 문제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인지부조화의 요소를 정치적 입장으로 확대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인지부조화는 정치적으로 우파의 반공주의와 좌파의 음모론 그리고 종교와 관련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지부조화를 겪는 사람은 사안에 대한 모든 ‘증거없음’ 또는 ‘증거의 오류’까지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종교는 물론 극우와 극좌는 자기정당화를 통해 윤리적 정당성까지 획득한다. 때문에 그에 반하는 행동들은 모두 어리석거나 ‘악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러한 규정은 의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극우와 극좌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포기하기란 담배를 끊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자기정당성에 중독된 환자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 벽(사진=김재훈)

화를 내고 욕을 하면 그 대상에 대한 기분이 풀린다는 카타르시스 이론은 잘못되었다고 인지부조화 이론은 말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해로운 행위를 할 때는 강력한 동인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바로 자기가 한 일을 정당화할 필요성이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약한 아이를 놀리고 못 살게 구는 소년을 보자.(…)소년은 나중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약간의 부조화를 느끼며 자문한다. 나같이 행실이 바른 애가 어떻게 착하고 죄 없는 아이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었지?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그는 희생자가 착하지도 무죄하지도 않다고 자신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그 애는 바보에다 울보야. 일단 희생자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다음번엔 훨씬 더 못되게 굴 가능성이 커진다. 최초의 해로운 행위를 정당화하고 나면 더욱 공격적인 행위를 위한 무대가 마련된다.”
『거짓말의 진화』는 풍부한 실험적 자료를 토대로 자기정당화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인지부조화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서로, 인간이기에 저질렀던 나 자신의 실수들을 다시 점검해볼 기회가 된다. 보편적인 인간의 인지구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은 ‘우분투(타인을 향한 인간애라는 차원의 의미로서)’로 향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정치 세력과 국가 역시 자기정당화를 위해 자기기만적인 거짓들을 탑처럼 쌓아 올려 왔다. 반복되는 가해와 피해의 역사에 대한 이 책의 지향은 다음 한 문장에 담겨있다. “복수 없는 이해, 보복 없는 보상은 자기정당화를 중지할 때만 가능하다.” 오류 덩어리에 다름없는 인간의 인지구조에 대한 과학적 분석 끝에 가닿는 결론은 오히려 굉장히 명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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