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 시인의 風景

오래 전 사람들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해와 별, 혹은 바람 같은 자연지물을 이용했다. 별을 보며 배의 위치를 깨닫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로 배가 나아갈 방향과 배가 돌려야 할 때를 짐작했다.
 

흐린 날이나 안개 낀 날에는 사용할 수 없는 이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별과 바람을 대신해줄 무언가를 소망했다. 자침(磁針)을 갈대나 나무 등에 붙여서 물에 띄워 보거나 명주실에 달아매어 사용하는 등, 집약된 기술이 낳은 것이 나침반이다. 나침반의 등장에는 이처럼 자연의 섭리와 동반하며 삶을 극복해온 인간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그 결과,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최초의 키포인트, 바다의 문이 열렸고, 거듭된 진화로 이제, 인간은 자신만의 별을 갖게 되었다. 신인류의 나침반이라 불리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가 그것이다. 이 나침반을 통해 우리는 길을 찾고 맛 집을 찾으며, 어린 시절의 고향집을 찾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달리, 기계로 무장된 이 나침반은 망가지면 쓸모가 없거나 고쳐야 하는 별이다.
 

12세기 말인 프랑스의 시〈La Bible de Guynet de Provins〉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결코 움직이지 않는 별이 있다네
 결코 속이지 않는 항해술이 있다네
 그것은 갈색 돌로 된 자석을 이용하는 것이지

이미 그때, 나침반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이 시(詩)는 별의 영원성을 말하는 시적 메타포(metaphor)로도 읽힌다. 불변의 진리처럼 움직이지 않는 존재, 참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향성을 지닌 존재를, 나침반을 표현한다.
 

시(詩)에 있어서 나침반의 상징성은 이처럼 삶을 항진케 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의미의 몸체를 키운다. 희망, 그리움의 대상 등, 고대의 나침반이었던 별의 상징역시 시인들에게 유독 빛나는 이름이 된다.
 

봄밤이다. 볕 그림자에 서있던 복숭아나무가 분홍빛 꽃잎을 떨어뜨린다. 복사꽃은 감미로운 봄바람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달밤에만 핀다 했던가. 보아주는 이 없이 저 혼자 피어났던 복사꽃이 지는 것을 바라보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일들이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느껴진다.
 

나에게도 별은,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바라보게 하는 나침반이었기 때문일까, 몸속에 자석을 묻은 것처럼 그리운 이의 향방만 쫓던 아픈 한 때가 스스럼없이 시(詩) 속으로 흘러든 것은, 

 복사꽃 진다 볕뉘에 피었던 복사꽃 진다 
 바람 한 점에 겹겹 허공, 천길 벼랑 너머
 천랑성 뜬다
 사나운 별빛에 물어뜯긴
 복사꽃 되는 일도 복사꽃 바라봄도
 저무는 봄밤의 명주바람 탓
 실낱같은 바람은 꼬리를 숨기는데
 돛을 단 별자리가 몸을 트는 저녁은
 남쪽이 멀다
 복사꽃 지는 마음은 삿대가 짧다
 꽃이 진다는 건 지나간 별의 방향을 묻는 일
 당신에게 가는 길이 그러했으니 별의
 방향만 읽어내는 꽃인 것처럼 몸속에
 별자리를 묻은 나는 자석이어서
 안개 낀 밤에는 뱃속에서 새가 울었다
 가수알바람 부는 흐린 밤에는 쇠가 된
 가슴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왔다?
 꽃 지는 남쪽이 그리운 건 무슨 까닭인가.
  

   -졸시 (나침반) 전문

 

별처럼 멀면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별의 방향만 읽어내는 꽃이 되는 일이다. 삶도 사랑도, 정리(情理)를 서두르는 나이, 반평생을 지난 나는 이제 지는 꽃의 입장을 이해할 듯싶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던져질 때 자장을 일으키던 마음 속 나침반을 떠올려본다.
 

부모 형제를 비롯하여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내 삶의 나침반이었다. 내가 흔들릴 때 내가 울 때, 나는 그들을 지표 삼아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을 무사히 항해할 수 있지 않았던가, 어떠한 극점에서도 다독이며 안아주던 손길이 거기 있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되는 것은 생각되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18세기 독일 시인 노발리스의 어록에서) 극점으로 치닫던 자석의 바늘이 북쪽도 남쪽도 아닌 중심을 향해 흔들림을 멈춘다. 꽃 지는 남쪽을 그리운 것은 멈추어 있는 고요의 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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