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 시인의 風景

서귀포로 가는 길은 언제 어디서나 하향곡선이다. 굽이굽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일어서는 바다, 눈높이만큼 일어선 바다는 부서지는 햇살로 오랜 지기처럼 다정해진다. 눈썹 부근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서귀포에 다다랐음을 감지한다. 서귀포에 다다른다. 바다를 향해 겹겹 건물을 세우고 꼬부라진 옛길들은 바다를 향해 흘러내린다. 바다로 나가 시가지를 바라보면, 햇살 먹은 지붕들이 빛난다. 흰 빛에 압도당한 각막이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눈 안의 모든 풍경들 사라진다. 텅 빈 각막 안이 추억이란 빛으로 채워진다.

내가 여고를 다니던 시절에는 삼매봉 옆구리를 지나는 좁은 도로가 일주도로였다. 지금은 중앙로를 관통하는 일주도로가 신시가지를 향해 뻗어 있지만 커튼이 젖혀지듯 왼쪽 시야가 확 열리는 그 길이 나는 좋다. 크고 작은 언덕이며 녹색의 장원(莊園)이며 덧칠된 귤창고 같은 것이 햇살 속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광경이 예전과 다름없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비밀의 화원 같은 동화가 불현듯 생각나고, 그림엽서에서나 보던 이국의 어느 마을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지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멀미에 지친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더 없이 행복해지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한 시절로 안내하는 관문(關門)으로 그 길은 존재한다. 서귀포에 대한 기억은 정작 소박하다. 서귀포 시내에서 살았던 시기가 유년기여서일까, 언니 손을 잡고 놀러갔던 새섬의 풀밭이며 먼나무를 보러 갔던 천지연, 백중날, 어머니와 함께 물 맞으러 갔던 소정방 등. 보자기 속에 간직한 몇 점의 풍물처럼 남아있을 뿐이지만, 소멸되지 않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 또한 고향일 터. 추억 몇 점을 붙들고 서귀포를 그리는 동안, 지상의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지 존재론적 기원(origin)을 향하여 회귀하는 연어처럼 본능이 시킨 소망은 참혹한 아름다움이었다.

 서귀포에서는 누구나 섬이 된다
 섭섬, 문섬, 범섬, 새섬 같은 섬이    
 배후여서
 새연교 난간에 한 컷의 생을
 걸어놓은 사람은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
 서귀포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묻는다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
 언덕에 서서 여기가 어디냐고
 서있는 곳을 되돌아본다
 당신이 서 있는 거기서부터 서귀포는
 언제나 서쪽이다.
 녹두죽 같이 끓는 바닷가 찻집에 앉아
 노을처럼 긴 편지를 쓰면
 기억만큼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것
 은 없다
 언제쯤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불붙는 해안선을 지나면
 게와 아이들이 남아있는 자구리 해안
 긴 문장이 따라오는 지상에서
 가장 참혹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쓰
 고 있다면
 당신은 서귀포에 있는 것이다
 떠도는 섬을 당신의 마음속에
 붙잡아 앉힌 것이다

  -졸시「서귀포」 전문

졸시「서귀포」에 대해 박성현 시인은 그의 걸음걸이나 손바닥의 각도, 혹은 어깨 근육의 미세한 기울기가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의 심장이 고향 서귀포와 빠르게 조응함으로써 잠들어 있는 서귀포를 깨우고 존재의 내륙을 재구성한다고 평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서귀포는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의 내륙이며 영원한 안식을 향해 출발하는 기항지다.

서귀포(西歸浦)는 진시황의 명령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왔던 서시 일행이 이곳에 머물다가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정방폭포의 절벽에 서시과처(徐市過處)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하니, 세월 속에 지워진 역사의 고증은 지명 속에 남은 어제를 보여 준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물리적 절경과 형이상학적 절경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내 입술이 파편처럼 떠돈다.

칠십리 바닷가를 두루 다녀본 당신이라면, 노을이 얼마나 긴 문장인지, 얼마나 참혹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쓰는 지 알 것이다. 새연교 위에 선다. 외롭고 고독한 당신도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처럼 어두워졌을까, 잡을 수 없는 마음을 붙잡아 앉히는 일은 4개의 섬을 가슴팍에 앉힌 서귀포의 몫이라는 걸 알 때 쯤, 그 어둠 속에서도 서귀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로 당신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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