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자녀교육, 고민 좀 합시다

다른 부부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마음 아픈 일은 그들이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온통 자녀교육문제로만 대화주제를 삼는다는 점이다. 가끔은 가정이나 예술, 문화에 대한 주제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내 그것 역시 교육문제에 묻혀버린다. 특히 소위 인텔리라고 하는 많은 이들이 현재 공교육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제기하면서, 과연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고민한다.물론 부모로서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다. 아니 안타깝다 못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가끔은 화까지 치솟는다. 그들은 말로는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해 좋은 성적을 얻기를 원한다. 좋은 성적, 궁극적으로는 명문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식은 아무리 잘 키워도 괜히 주위에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니 어찌 답답하고 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학부모나 자식이 불쌍할 따름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부모들이 보이는 양상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이다. 남편은 자녀를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깥 일 때문에 자녀교육을 거의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고 산다. 가끔은 그런 주장을 아내에게 하지만 부부싸움이 되고 만다. 대신 돈을 열심히 버는 것으로 스스로를 열심히 합리화시킨다. 한편, 아내는 마음 속으로는 남편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자식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다 보내는데 자기만 안보내면 도무지 불안하고 자식을 방치하는 것만 같아 이 학원 저 학원 마구 보내댄다. 아이에게는 이게 다 너의 미래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아이를 통한 대리만족, 자기우월감의 욕심일 뿐이다. 시험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자기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친구 아이의 성적이다. 과학고나 외고 입학이 중학교까지의 삶의 목표가 되어 버린다.학교에서 하는 설문조사에 그들은 학교가 인성교육, 감성교육을 더 강화해 줄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가 그것을 채워주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그럼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들은 그것을 가정에서 채워주는 대신에 오히려 학교를 끝내고 지쳐 돌아온 아이를 다시 학원으로 돌려댄다. 그러면서 학교가 인성교육을 못한다고 계속 불평을 해댄다.그나마 자녀교육을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유있는 집안에서는 제주시나 육지로 아이를 보내거나 아예 유학을 보내는 것이 자녀교육의 대안이라고 결심을 한다. 거기에 이미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가족은 다 찢어져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올바른 가정이며 자녀를 위한 길이라 믿는다. 아이가 할 일은 너무 많은데 학원 갔다오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서 고민이라는 부모에게, 당신이 직접 공부해서 집에서 아이를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학원에 보내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굳이 식구들까지 힘들게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실상 그가 마음 속으로 느낀 것은 그럴 용기와 결심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고 난 확신한다. 부모는 돈 벌어오고 집안일 하고 안 그래도 할 일이 쌓여있는데 아이 공부까지 시킬 여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논리이다. 마음 속으로는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하기에는 용기가 없는 것이다. 영어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세상에서 영어는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은 영어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조기교육에 영재학습에 학원에 온갖 교재를 들이민다. 학원 한번 빠지면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 떨며 자녀를 겁준다. 그러나 부모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자녀는 스스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보다 쉽고 효율적인 영어공부가 어디 있을까? 부모들도 사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용기없음과 게으름을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아이들의 노력, 능력 탓으로 돌리고 만다.이제 당신 자신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에 대한 기대를 채우는 것은 아이가 아니다. 아이는 자기 나름의 기대와 세계가 있고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이다. 당신이 아이에게 거는 기대는 그대로 당신 자신의 몫이다. 오직 당신 자신의 몫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책임감을 갖는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아이와 대화를 해보자. 그들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그들의 삶이 과연 무엇인지, 그 삶을 위해서 부모는 무엇을 협조(!)해야 할지 대화해보자. 그리고 부모들이여, 먼저 공부하자! 아이가 공부를 잘하길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공부를 이야기하기 전에 아이의 눈에 항상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심어주자. 그 다음은 순전히 아이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하늘의 몫일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니 보이지 않더라도 그냥 사랑하며 살자. 그것보다 더 큰 교육은 없다. 인성, 감성 다 통틀어 가족이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은 세상 어디에도 기필코 없다.김원범/본지 발행·편집인제253호(2001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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