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대규모 인파에도 혼잡스럽지 않고 질서 정연

▲ 지난14일 중국 다롄시에서 열린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 아카시아꽃 걷기 대회에 참가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30만의 인파가 싱하이 광장(성해광장, 중국 다롄시)에 몰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파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잡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 대련시 아카시아꽃 국제 걷기 대회가 지난 14일과 15일 중국 다롄시에서 개최됐다. 장명선 서귀포시관광협의회장을 단장으로 서귀포시 대표단 19명(서귀포시 4명, 서귀포시관광협의회 12명, 기자단 2명, 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 1명)도 14일 열린 걷기 대회에 참가했다. 이번 걷기대회는 세계걷기 연맹이 주최하면서 서귀포시 대표단 외에도 일본 등 해외 26개 국에서도 대표단을 꾸려 참가했다.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는 지난 2006년 한국 서귀포시, 일본 구루매시, 중국 다롄시 등 3개 도시가 모여 도시 순회 걷기 대회를 통해 건강·우정·평화·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결성됐다. 이후 매년 3월에는 서귀포시에서 유채꽃 걷기대회, 4월에는 구루매시에서 철쭉꽃 걷기대회, 그리고 5월에는 다롄시에서 아카시아꽃 걷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개최일자도 셋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로 정해져 있다. 지난 4월 개최예정이던 구루매시 철쭉꽃 걷기대회는 지진으로 개최되지 못했다.

14일 오전 8시 개막식에 앞서 다롄시 지역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0~30명씩 유니폼을 맞춰 입은 것으로 보아 단체 참가자들이 많았다. 팀별로 깃발을 들고 있어 여느 집회 현장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서귀포시 대표단의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중국은 정부에서 협조문을 발송하면 기업들은 대부분 따르게 된다. 여기 참가팀들도 대부분 기업에서 단체로 참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 공식적으로 참가 신청자만 15만 명이 넘었으며, 일반 참가자들까지 모두 30만 명이 넘었다.

▲ 고구려 비사성.

간단한 개막식에 이어 오전 8시 30분 경 30만 인파가 차례로 출발했다. 서귀포시 대표단도 중간에 섞였다. 헤어지면 찾을 수 없기에 중간에 만날 지점을 미리 약속했다.

한참 걷다가 주변을 살펴보니 일행 중 몇몇만 보일뿐 몇몇은 보이지 않았다. 앞 뒤로는 끝없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떠밀리는 형국이다.

함께 참석했던 김병수 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장은 걷기 대회가 끝난 후 “30만 인파에 파묻혀 걷다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한국 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피난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된 것이 이해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동아시아 걷기 대회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꽃을 주제로 하고 있기에 내심 하얀 아카시아 꽃이 어우러진 거리를 기대했지만, 거리 양쪽으로 아카시아 나무만 보일 뿐 하얗게 핀 꽃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오후 6시에는 양운 호텔에서 서귀포시와 구루매시, 다롄시 대표들이 모여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 활성화 방안을 위한 회의 및 교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다롄시 쭈청칭(朱程淸) 부시장은 “처음 7000명이었던 참가자가 꾸준히 증가해 오늘 30만 명 넘게 모였다면서 이제는 걷기대회가 다롄시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참가자 중 100명을 추첨해 내년 서귀포 유채꽃 걷기 축제에 무료로 참가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걷기 대회를 통해 협회 뿐만 아니라 정부와 시민간 교류도 돈독히 이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명선 서귀포시관광협의회장은 “다롄시와 서귀포시, 일본 구루매시는 지난 2006년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를 결성한 이후 서로의 길을 걸으며 평화와 화합을 다지고,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적인 걷기 축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봄에 만발하는 꽃처럼 동아시아 플라워 워킹리그 또한 더욱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동북지방의 경제중심지 다롄

다롄시는 요동반도의 중심지로 1898년 러시아의 조차지가 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강점하에 있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우리나라와 함께 일제 강점에서 벗어났다. 이후 1960년 뤼다(旅大)로 바뀌었다가 1981년 다롄으로 회복됐다.

걷기대회가 열린 싱하이 광장은 다롄시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건립됐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총 면적이 176만㎡에 달하며, 광장 내 원지름이 무려 200m에 이른다.

다롄시 면적은 870.73㎢로 제주도(1848㎢)의 절반 크기이며, 인구는 2015년 12월 기준 약 700만 명(호적인구 594만3천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1차산업 5.9%, 2차산업 46.3%, 3차산업 47.8%로 2·3차 산업 중심의 도시로 어업·염전 및 해운업, 조선업, 석유화학 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곳은 북경 등 타 도시와 다르게 평지가 적어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는 것 또한 특징이다.

다롄시는 이전에 고구려 영토였다. 수·당나라와 전쟁 당시 수군의 요충지로 평양방어선을 구축했던 비사성이 이곳 최고봉인 대흑산에 위치해 있다. 비사성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서문쪽으로만 오를 수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현재 성문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는 당태종 이세민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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