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아 / 전교조 제주지부 대의원

지난주, 우리학교 도서관이 1월 초부터 시작된 대수선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식을 했다. 3월 말에 비공식적으로 개관했지만 이런저런 뒷마무리 작업으로 개관식은 늦어졌다.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도서관을 소망하며 꿈을 품기 시작한지 14개월 만의 일이다. 기대하는 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한 예산으로 설계 단계부터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왔다. 공사 업체가 아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알뜰살뜰하게 정성껏 공간을 구현해 주기를 바랐으나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는 도서관이 아이들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들어가며 설득하기 어려웠다. 더 좋은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자책의 시간이 길어졌다.

공사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새로운 도서관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이끌어 냈다. 도서부원들은 새로워진 도서관에서 활기 넘쳤다. 스스로 당번 표를 짜고 서가 정리는 기본으로 대출, 반납, 청소 활동까지 한다. 연체로 인해 대출이 정지된 친구들에게 청소봉사를 시키고 대출정지를 풀어주는 센스까지 발휘하며. 어른들이 준비하는 개관식과 별도로 도서부 아이들은 개관식 기념 이벤트 주간을 기획했다. 이벤트 응모권을 도서관 구석구석에 숨겨두면 응모권을 찾아낸 학생들이 답을 적어 응모함에 넣었다. 행사를 기획하며 아이들은 1인 1표로 응모 기회를 제한한다거나 응모함 관리 방법 등을 고민하고 절차의 문제점이나 추첨 방식의 공정성을 따져가며 행사를 준비했다. 교과서 밖 생동감 있는 공부였다. 이벤트 마지막 날 점심시간, 참가 학생들이 도서관에 모였다. 1학년 동생부터 6학년 선배들까지 올망졸망 모여 앉은 아이들은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추첨하는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킨 참가자에게는 작은 초콜릿을 선물했다. 문화상품권 다섯 장이 걸린 소박한 행사였지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른은 도우미로 참여해 상품 지원을 담당한 나 혼자뿐이었다. 아이들의 생각과 힘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그들이 주인공인 잔치였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어 삭막했던 과거에 비해 아지트 공간에 몰래 숨어들어가 책을 읽는 아이들과 온돌마루에서 뒹구는 아이들, 크고 작은 아이들이 다람쥐마냥 다락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작년 일 년 동안의 도서 대출 건수는 100건도 못되었으나 지난 한 달 동안에만 무려 900권 가까운 대출 기록은 ‘우리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할 의무감을 상기시킨다.

책을 많이 읽으면 사고력이 깊어지니까. 독서력만큼 문제해결력도 높아지니까. 다양한 책을 접하면 공부도 잘하게 되니까. 입시 지옥을 버텨내야 하는 대한민국 부모들은 이처럼 책을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자녀를 보며 흐뭇해하고 더 많은 독서를 기대한다. 이제는 독서의 양적인 가치와 더불어 감성을 키우고 인생을 살찌우는 독서를 위해 책을 읽는 방식과 공간도 고려하면 좋겠다. 물론 감옥에서도 사색과 깊이 있는 독서로 영혼에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우리를 감동시킨 위대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소통 없이 혼자만 하는 독서는 다독(多讀)이 다독(多毒)이 될 수 있다. 히틀러도 독서광이었다. 그의 독서 방식과 내력은 자세히 알지 못하나 그가 타인과 소통하며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아름답고 안락한 도서관에서 성장했다면 수백만을 죽이며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학살자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금요일 저녁은 우리학교 도서관에서 별빛독서교실이 열린다. 학생들은 드로잉 수업을 받고 부모님들은 독서모임을 한다. 부모가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에 함께 머무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광경인가! 그러니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책장을 넘기는 부드러운 소음 속에 한번쯤 빠져볼 일이다. 손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스마트폰의 전원은 꼭 꺼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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