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어느 빌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에 경악한 여성들은 그동안 쌓여온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한 여성의 죽음, 그리고 여성들의 분노 앞에서 많은 남성들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단지 남성이기 때문에 누린 특권들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고르라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성차별을 꼽을 수 있겠다. 제주도의 경우,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가고 딸은 아들보다 더 성적이 좋고 재능이 많더라도 제주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여자이기 때문. 그런 상황을 다들 얼마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남성들이 보다 많은 교육을 받고, 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보다 많은 지위를 누리는 동안 여성들은 편견으로 얼룩진 부조리한 사회를 견뎌야 했다. 여성차별을 개선하려 하면 할수록 무슨 까닭인지 사회에 드리운 여성혐오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차별로 인한 고통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여성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던가. 지금 여성들은 어느 때보다 큰 소리로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성평등. 그리고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남성들의 의식개선.
여기, ‘여성들이 대체 무슨 차별을 받았다는 것인가?’라고 중얼거릴 남성들을 위한 책이 한 권 있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이 뒤바뀐 세상은 어떨까. 게르드 브란텐베르그(Gerd Brantenberg)는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그와 같은 세상을 그린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마치 거울에 반전된 것 같은 세상이다. 가령 『이갈리아의 딸들』 속 남성들은 성기를 감싸는 덮개인 ‘페호’를 착용해야 한다. 답답하게 옥죄는 브래지어의 남성 버전이다. 소설은 이와 같은 반전을 통해 현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차별과 부조리, 남성의 폭력성을 풍자한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역전된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현실의 남성중심적 사회 구조를 들여다 보는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5년 처음 출간되었다. 출간 후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책이 풍자하는 바가 유효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성평등에 대한 의식 수준은 1975년의 사회에 비해 크게 발전한 바가 없는지 모르겠다.
남성이라서 부끄럽다. 이번 강남 여성 살인사건 앞에서 남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성들이 많이 보일수록 더욱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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