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원형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구나 식물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과 달리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본다는 것은 얼마나 추상적인 시도일까? 이런 애매하고 답이 없는 시도임을 알면서도 엄청나게 바람이 부는 날, 삼화지구 남쪽에 있는 한창 공사 중인 소로를 따라 오래 된 귤나무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삼화지구의 소란과는 달리 그곳에서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도련마을에는 큰 나무들이 세월의 풍파를 말해주며 서 있고 마을 전체가 귤꽃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떻게 지척인 곳에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장소가 공존할 수 있을까? 마을회관이 보여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앞문은 잠겨 있고 뒷문만 열려 있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마을회관 뒤로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역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런데 곧 행운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손녀딸과 놀이터에 가는 모양이었다. 그분께 여쭈어보니 마을회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련 귤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 주인이 사는 곳도 소상히 알려 주신다.

제주도의 전형적인 올레길로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오른쪽에 커다란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 안에 이렇게 큰 마당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그 역사를 품은 나무들이 서 있었다. 나무는 아담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럼에도 세월의 무게는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바람 때문이었는지 열매들이 땅에 떨어져 있었고, 이제 나무 한쪽에만 물이 말라버린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5월의 초저녁 풍경이 나무 아래로 드리워지고 바람 방향에 따라 그늘이 얼룩거렸다.

조선시대 귤 재배의 흔적이 집단적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하는 이곳 도련 마을. 수령으로 치면 250년이 넘은 고목들이니 생물학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가치도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렵사리 찾은 나무 앞에 서고 보니 나무의 사실적 가치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나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 표지판에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귤이 어느 정도 크기의 열매를 맺고 어떤 약효가 있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어떤 맛이 난다는 등의 설명은 귤나무에 대해 오래 간직하고 싶은 황금빛 환상에 검은 덧칠을 해 버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들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 당장은 나무의 연륜과 외형만 바라보고자 한다. 나무에 낀 이끼, 밑동이 사라진 모양, 제주의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의 전형인 한쪽은 깎이고 한쪽은 비교적 풍성한 모양의 나무들을 확인하는 과정을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도련 귤나무들이 서 있는 이곳은 앞으로도 몇 번쯤 더 나무에 대한 꿈을 자극할 것이다. 주변 과수원의 귤나무처럼 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지는 않지만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피는 느낌을 주는 이 귤나무는 더없는 신비의 대상이다.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다면 이 나무와 관계되는 마을의 내력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귤 재배가 이 마을에 미친 문화적 흔적을 찾는 것, 그리고 귤나무로 인한 마을의 생태적 변화를 그려보는 것 등 귤나무의 역사를 알아내는 것은 마을에 대한 포괄적 지식을 필요로 하겠지만 나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숙제 같기도 해서 귤나무를 떠나면서 또 다른 다짐을 한다. 귤나무의 문화를 찾는 과정에서 일부가 역사이고 일부가 신화라고 해도 아주 작은 것들에도 시선을 놓치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끼가 낀 나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혹은 어떤 사건을 겪음에 따라 줄기 밑동이 움푹 파여 그곳에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 있는 나무 등 공통적인 것은 이 모든 도련 귤나무들이 다부진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앉아 나무를 관찰하다보니 마치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다. 귤나무의 모습이 10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 온 키가 작고 마른 노인의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이 마을 노인이 술술 옛 이야기를 풀어 놓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노인이 이야기를 들려 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로 했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 가운데 귤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감각을 총동원해 들어보려는 마음으로.

한국사 연표에 의하면 귤은 탐라국의 세공물로 이미 고려 때부터 귤 진상의 상위목록에 있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주에서 이미 귤이 재배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제주의 귤이 갑작스럽게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었다기보다는 재래귤이 이미 오랜 세월 제주 땅에 뿌리를 내려서 자라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훨씬 후에 상업적 목적에 맞는 귤 종류가 다량 들어와 재래종의 존재감을 희석시켜 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 재래 귤의 원형이 비록 그 모양이 보잘 것 없는 떫고 신 맛을 내는 산물과 밴줄이라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보면 제주 자연의 원소를 진정 오랫동안 품어온 과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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