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은 시인의 風景

지난 5월 20일 효돈초등학교 25회 동창 졸업 48주년 사은의 밤 행사가 있었다. 48년 만에 전해오는 소식을 듣고 동창생인 필자 역시 한달음에 달려갔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예감이 들었음인가, 환갑이 넘었음에도 모두들 만사를 제치고 달려왔다. 회장인 김문원 전 서귀포 중앙우체국장을 비롯하여 현을생 서귀포시장, 현종진 전 남주고교 교장, 한공익 전 제주시 동부경찰서장, 송성환 전 효돈 동장, 또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72명의 동창생들은 이름표를 목에 건 순간, 48년 전의 아이들로 돌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세월을 되감았다.

 백발이 되신 두 은사님과의 해후는 너무 늦게 모신 탓에 죄스러웠지만 그만큼 더욱 뜻 깊고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인이 된 동창의 모습이 졸업 앨범 속의 얼굴로 영상 속에 펼쳐질 때, 우리는 모두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그들을 추모하며  변해버린 우리 모습을 위무하기도 했다. 신촌초등학교 교장인 강일봉 동창과 멀리 가평에서 날아온 강영금 동창의 섹소폰 합주, 제주도 민요가수인 한춘자 동창의 민요 한마당 등,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스승님과 동창 앞에 내 놓는 동안 한바탕 춤사위가 어우러지기도 했다. 행사 내내 영상을 담당한 김평길 동창, 사진을 담당한 현명화 동창 등,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꽃 피운 그날, 헌시를 낭독하는 내 맘도 푸르게 물들었음은 당연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72명의 동창생들은 이름표를 목에 건 순간, 48년 전의 아이들로 돌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세월을 되감았다.

월라봉도 예촌망도 예전과 변함없이 짙푸른데
친구야, 네 이름을 부르면 네가 아닌
다른 얼굴이 대답하는 구나
우리들이 멱 감고 놀던 쇠소깍이 관광지가 된 것처럼
친구야, 너를 만나니 옛날의 네가 아닌
너라는 名所가 나를 반기는구나
서리 내린 머리칼이며 주름 깊은 이마는
어릴 적 보았던 네 아버지, 네 어머니구나
꽃비 날리던 거리의 벚나무도 과수원의 귤나무도
종아리가 굵어져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었구나
이렇게 닮은 모습을 지니기까지
친구야, 우리는 48년이라는 먼 세월을 돌아왔구나
참으로 오랜만에
같은 학교, 같은 교실, 같은 창문을 열고
어릴 적 뛰어놀던 운동장을 바라본다
그때 그 운동장은 왜 그리 넓었던지
교정의 나무는 왜 그리 키가 컸는지
잡초처럼 돋아난 우리들을 그 푸른 운동장으로 이끄셨던
권경수 선생님은 자상한 아버지였고
김군식 선생님은 멋진 외삼촌이었지
고무줄을 끓고 달아난 개구쟁이 세월은
동강난 시간을 이어주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기억하지
팽팽하게 당겨졌던 그 날의 맑은 눈빛과 푸르렀던 날들을
우리는 아마
전국에서 제일 달달하다는 효돈 감귤
우리를 키워준 마을의 귤처럼 익어갔을거야
노랗게 익기 위해 푸른빛을 무수히 버리면서
낙과 같던 절망과 적과의 손길을 기다리던 귤꽃처럼
어떤 때는 희망까지 버리면서
속이 꽉 찬 알맹이로 영글었을거야
이른 새벽 싸하게 밀려오는 귤꽃 향기는
분명 고향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축복이었구나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우리는 효돈 초등학교 25회 동창
우리는 이미 서로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던 친구였구나
친구야, 종달새처럼 노래하던 때가 있었음을 잊지 말자
두 분 선생님이 우리에게 푸른 하늘이었다는 것도
친구야, 우리, 48년 전의 그날처럼 지저귀자
그때 그 마음이 늙지 않기를,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저기, 웃고 계신 선생님이 너를 부르니
까까머리 네가, 갈래머리 네가 달려오는구나
개구쟁이는 개구쟁이답게 새침떼기는 새침떼기답게
그때 그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구나
반갑다 친구야,

                                -효돈초 25회 동창 졸업 48주년 사은의 밤 헌시
 
 5월은 한 해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계절이다. 활짝 핀 꽃들과 싱싱한 초목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온 천지에 베일을 드리운다. 더 없이 아름다운 신부를 ‘오월의 신부’라 부르는 것을 보면 오월은 인생의 출발을 도모하는 축복된 계절임에 틀림없다. 6월로 접어든 오늘, 그날의 기억을 더듬노라니 오월의 향기를 맡은 것처럼 훈훈해진다. 사변적인 이야기여서 지면에 누가 될까 염려스러우면서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그 향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스승의 사랑과 우정의 깊이를 확인한 그날의 행사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도 한, 오월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가정과 사회를 두루 만져주는 오월의 향기를 흠향하면서 부모님과 스승님, 그리고 내 삶의 등대지기가 되어줬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날이 계속되기를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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