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기행] 바람아이 22부

 

무심히 집안으로 들어서던 민호엄마의 눈이 심하게 흔들린다.
 "……."
 "안녕하세요?"
 반가움에 들뜬 지아의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으응, 그, 그래."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기운이 없어 보인다.
 뻘줌히 민호와 민호엄마를 번갈아 보고 선 지아를 향해 나영이 묻는다.
 "어떻게 왔어? 쥬스 줄까? 우유도 있고."
 지아가 나영의 눈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지아의 눈을 피하며 부엌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가며 나영이 목소릴 돋웠다.
 "네 아빠와는 결혼은 안 할 거야. 회사도 곧 정리하려고 하고."
 "왜요? 왜 그러시는데요?"
 마른침을 꼴깍 넘기며 지아가 숨차게 말을 한다.
 "우리 가족들 모두 민호엄마가 좋아서 들떠 있는데…….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어서 아빠도 언니들도 너무 크게 실망하고 있어요."
 지아답지 않게 급하게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지아도 놀라고 있는 참이다.
 "왜 이렇게 급하니? 원, 정신이 쏙 빠지겠구나."
 "아, 죄송요. 하지만……."
 민호엄마는 데려다주겠다며 차를 주섬주섬 챙기며 지아한테 먼저 나가라고 한다.
 멀뚱히 선 민호에게 지아가 다가서며 귓속말을 한다.
 "민호야, 다음에 봐. 그리고 우리 아빠 정말 좋은 사람이야!……."
 민호는 다소 누그러져 보인다.
 "민호야, 나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네 엄마도 너무 좋고, 네가 도와줘!"
 지아는 현관에서 다시 한 번 민호에게 말을 쏟아놓는다. 그리고 민호엄마를 기다렸다. 민호엄마가 나왔다.
 "……."
 "무슨 말 하려고……?"
 민호엄마의 눈에 눈물이 보인다.
  "…저어, 왜 아빠랑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세요?"
 민호엄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전, 민호엄마가 아빠와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민호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난 그렇게 못해!"
 "왜요?"
 "어떻게……, 이제 그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아가 알 수 없는 말을 민호엄마는 하고 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 없는 민호엄마의 말에 가슴이 쿵 소리를 질렀다.
 지아가 어릴 때, 민호와 헤어지던 날, 민호엄마를 처음 보았던 그 날이 스치듯 떠올랐다.
 '무슨 말일까?'
 지아는 더 없이 혼란스러웠다. 민호엄마는 지아의 작은 손을 잡아준다.
 "지아야, 내가 너의 아버지와 결혼을 못하더라도 너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그래도 되니까……."
 민호엄마는 바람의 집, 본부에서처럼 따뜻한 얼굴로 지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아는 알지 못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전에 만난 민호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도 더 많이 아빠를 닮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민호엄마 모습에는 지아 자신이 보이는 듯했다.
 '왜 이런 괴상망측한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세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지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자기도 모르게 울먹이며 말하고 있다. 마치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전, 사실 우리 아버지의 딸이 아니에요. 엄마가……. 으으, 으아앙~!"
 지아가 운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참을 수가 없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지아, 지아야!"
 민호엄마가 운다. 지아보다 더 서럽게……, 운다.
 "……엄마!"
 설움에 겨운 지아가 엉겁결에 엄마를 부르며 민호엄마 나영의 품에 안긴다.
 "미안하다. 지아야……,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지아야. 지아야~!"
 민호엄마 나영이 지아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에 가까운 울음을 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지아 눈과 민호엄마의 눈이 서로 엉킨다.
 "지아야……."
 민호엄마가 지아를 꼭 안는다. 너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한 가슴이다.
 "……."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따뜻함이 바스락 부셔져 버리는 환상이 될까봐, 숨도 쉴 수 없었다 지아는.
 민호엄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아는 놀이터에서 한 참을 서성댔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눈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민호엄마를 만났다는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비밀 하나를 품었다.
 기분 좋은 비밀 하나, 설렘을 가득 머금고 있는 비밀 하나…….
 민호는 좋겠다.
 '나도…….'
 "정신 차려! 이지아~!"
 지아는 고개를 흔든다.
 몇 날이 지났다.
 아버지는 기운이 없다. 아마도 민호엄마와 결혼하지 못하는 마음에 기운을 잃어버렸나 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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