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건천(乾川)이다. 큰비가 오면 바다를 향해 굽이치는 거대한 용처럼 연동(聯動)한다. 하천 곳곳에 용천수와 소(沼)가 있어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거나 마을 사이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하천 곳곳엔 크고 작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산을 쪼개어 벌렸다하여 '산벌른 내'라고 부르는 효돈천도 그 하구에 용천수가 솟아나오는 쇠소깍을 품은 비경(秘經)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쇠소깍의 모래자갈 위에 입고 간 옷을 벗어놓고 동생들과 멱을 감으며 긴 여름 해를 보냈다. 건너편 기슭까지 헤엄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헤엄치다 지치면 모래 벌에 드러누워 하늘 높이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이 들곤 했다. 꿈도 마음도 따라 두둥실 떠올랐던 그 여름 날, 단잠에서 깨어나 물빛을 바라보면 심장의 피를 빨아들일 듯 두려움이 들었다. 생과 사의 경계처럼 옅고 짙은 푸른색이 오묘했기 때문일까, 어쩌다 시퍼런 물이 담긴 소(沼)로 들어서면 차디찬 물의 기습에 소스라쳐 놀라던 기억이 어린 마음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서움조차도 정직하게 바라보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행복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과거에는 용소(龍沼)라고 불렀다는 쇠소깍에도 예외 없이 전설이 서려있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 말고도 부잣집 무남독녀와 그 집 머슴의 동갑내기 아들이 사랑을 꽃 피우지 못하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애틋하게 남아 있다. 나 개인에게도 전설이 되어 있는 곳이다. 중학교 시절 남몰래 좋아했던 동네 오빠가 행방불명 됐었다. 친구가 소피보러 간 사이 사라졌다는 그 오빠는 비 개인 다음 날, 퉁퉁 불은 시체가 되어 떠올랐다. 시체를 인양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틈에 끼어 흐느끼던 선배 언니, 새침데기인 그 언니의 우는 모습은 내게 또 하나의 전설로 남아 있다.

몇 해 전, 모 문학잡지에 <시인의 고향과 시>라는 제목의 글을 청탁받은 적 있다. 그때, <나를 읽는 몇 가지 코드 >중 하나로 쇠소깍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만의 보물로 소개하고자 쇠소깍을 찾았지만 넉넉한 인심과 감귤의 고장이었던 마을의 조용한 바닷가가 관광객이 들끓는 장소로 탈바꿈해 있었다. 혼자 아껴두었던 보물을 잃은 기분이었지만 아무리 감춰져 있어도 빛을 드러내는 보물처럼 그곳은 이미 모든 사람이 소유한 보물이 되어 있었다. 언제고 오고야 말 장면의 현시(顯示)처럼.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은 언제나 내 얼굴의 남쪽에 있다. 창을 열면 쇠소깍의 맑은 물이 보이고 그곳에서 길어 올렸던 어린 날의 이야기들이 동화처럼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이 함축된 그곳을 시로 형상화하는 것은 숙명적인 귀결이었다. 다음의 시는 그 잡지에 실렸던 시인의 고향에 관한 시(詩)다. 남쪽과 전설을 화두로 삼아 쇠소깍의 물을 시심 속에 길어 올린 내 얼굴이기도 하다.

소가 드러누운 것처럼 각이 뚜렷한 
너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남쪽은 날마다 흔들린다 
창을 열면 그리운 남쪽,  
살청 빛 물결을 건너는 것을 남쪽의 남쪽이라 부른다면 
네 발목에 주저앉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움보다 깊은 색, 살이 녹아내린 
남쪽은 건널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너도 두 손을 가리고 울겠지, 
눈 내리는 날의 너를 생각하다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가슴팍에 글썽이는 눈을 묻은 
젊은 남자의 비애를 떠올린다  
흑해의 지류 같은 여자를 건너는 것은 
신분이 다른 북쪽의 일, 
구실잣밤나무의 발목 아래 고인 너는 따뜻해서 
용천수가 솟아나온 너는 더 따뜻해서   
비루한 아랫도리, 아랫도리로만 흐르는 물의 노래,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검푸른 혈흔이 남아 있는 마음이 
무르팍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먼 바다로 떠나가는 남쪽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 

-졸시 <쇠소깍, 남쪽> 전문 

 

전설(傳說)은 전(傳)이 뜻하는 바와 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으로 어떤 공동체의 내력이나 자연물의 유래, 이상한 체험 따위를 소재로 파급된 문화 형태다. 전설에는 되도록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려 하지만, 대개는 엄밀히 말해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전설은 옛날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에 고향이 있고 어린 시절이 있고, 그 고향 땅에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왕년(往年)에 말이야, 로 시작하는 당신이 있다. 당신에게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옛 이야기가 전설로 영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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