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시인이 『제주신화』를 펴냈다. ‘원형을 살려내고 반듯하게 풀어내다’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이면서 제주해녀문화 보전 및 전승위원이기도 한 김순이 시인은 제주문화, 특히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과 해녀 등 제주의 현재를 만들어온 원형질 탐구에 천착해 왔다. 어린 시절 진짜 이야기꾼 할머니가 들려주던 ‘인생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것은 자청비, 금백주, 감은장아기 등 제주신화 속의 여신들이었다. 김순이 시인은 제주여인으로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도정에서 ‘굳건히 살아남는 여자’가 되기를 바랐던 할머니의 가르침으로 추억한다.

이제는 흔적조차 희미해진 우리 신화의 원형이 이 나라의 끝자락인 제주도에 온전하게 남아 있음에 김순이 시인이 주목한 결과로 나오게 된 책이 바로 <제주신화>다. 260여년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던 고립무원의 섬이었기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일만팔천신, 신화가 보물로 떠오르는 작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부터 문무병, 한림화 등과 함께 굿판을 다니면서 이야기로서 신화와 심방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신화의 차이를 느끼면서 기록문학으로서의 작업을 다짐했고, 이제 그 결과물을 내어놓게 된 것이다.

물론 신화의 고향 제주지역에서조차 신화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한계성이 있다. 그러나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널리 알리고 보전하는 데 평생 힘써온 저자 김순이는 더 늦기 전에 제주신화가 온전히 기록되어야 함을 절감했다. 저자는 2000년부터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제주어를 현대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제주신화로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제주신화는 물론이고 한국신화 연구자들을 위한 훌륭한 기본 자료를 펴내게 된 것이다. 특히 더 나아가 신화를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와 상징을 밝히고 전설, 민담, 설화와 구분되는 신화의 특징을 요약, 정리함으로써 신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혔다고 평가된다.

시인 김순이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 제주해녀문화 보전 및 전승위원이기도 하다. 1946년 제주에서 태어나 1969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 오름나그네 김종철과 결혼, 슬하에 아들을 두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민속연구원, 제주도지편찬상임위원, 제주도문화재감정관,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시 <마흔 살> 외 9편으로 등단해, 시집 『제주 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향하여』, 시선집 『기억의 섬』 등 다수 출간했다. 제주 민속에 대한 조사 보고서로 「제주도 잠수용어 조사보고서」(1989), 「제주도의 옹기공예」(1990), 「제주의 초공예」(1994), 「제주의 구황음식」(1995), 「제주해녀의 전승언어」(2004) 등이 있다. 또한 제주 역사 속 여성들에 주목, 의녀醫女 장덕, 열녀烈女 천덕, 의녀義女 홍윤애, 해녀海女 금덕 등을 제주여성문화의 광장으로 불러냈으며, 이밖에 「문화영웅으로서의 여신들」(2003), 「제주여성의 주거공간」(2009), 「제주기녀, 또 하나의 제주여성」(2009), 『제주의 여신들』, 『제주 유배인과 여인들』 등의 논문과 저서로 제주여성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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