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 시인(서귀포시 주민복지과)

강현수 시인

"제주에는 매일 바다로 출근하는 여인이 있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영화 '물숨'은 시작되었다. 서귀포에 하나뿐인 영화관에서 하루에 딱 한번, 저녁 7시 10분에 상영되는 '물숨'을 보기 위해 저녁도 포기한 채 허둥지둥 영화관을 찾은 나에게는 그래도 모처럼 누리는 호사였다.

돈 나올 구멍은 없고... 자식들은 배고파 울고... 남편마저 병으로 잃은 엄마는 무서움도 잠시, 출렁이는 바다로 출근을 한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8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먹고 제비꼬리 같은 오리발을 하늘로, 바다로 무수히 반복하며 숨을 참은 대가로 바다가 내어주는 전복과 소라가 아이들의 밥이 되고, 공책이 되고... 그래서 해녀 엄마는 두통이 심해도 마약 같은 뇌선(약)을 먹어가며 바다로 출근을 했던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도 그녀들과 함께 숨을 쉬었다. 전복이라도 따게 되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로 응원했다.

숨의 길이에 따라 해녀들의 바다에도 계급이 존재했지만 고령의 해녀들을 위한 할망바당(할머니바다)만큼은 손을 대지 않는 모습에서 나눔을 보았고, 먼저 바다에 도착했다고 먼저 물질을 나서지 않는 모습에서 배려를 보았다. 해녀들의 나눔과 배려의 문화가 지금까지 제주 바다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영화 '물숨'을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화로 선정했나보다. 가뭄의 단비처럼 참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시 구좌읍에 자리 잡은 해녀박물관에 가보면 '여자로 태어나느니 쇠(소)로 태어나주. 아이 낳고 사흘이면 물에 든다.'라는 글귀가 있다. 아이를 출산한지 3일 만에 다시 바다로 내몰리는 소보다도 못한 제주 여성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런 척박한 섬 제주도가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금싸라기 섬이 되었다. 그만큼 제주여성의 위상도 높아졌을까? 제주 해녀의 삶은 또 얼마나 넉넉해졌을까? 해녀문화가 잘 보존되고, 발전하고 있는 걸까?

오늘 아침, 직장이라는 바다에 출근하는 여인을 보았다. 그중에 특히 미취학 자녀를 두고 있는 직장맘의 안색을 살폈는데 어둡고, 생기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조화롭게, 슬기롭게 이어가면 좋겠지만 어디 직장생활이 호락호락 하던가! 업무가 과중하게 밀릴 때면 직장맘의 육아는 전쟁이 된다. 육아는 체력전이다. 출산률이 매년 떨어진다며 호들갑만 떨 게 아니라 육아전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미타임(me time)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미타임이 물숨 직전의 여성들에게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녀가 물질할 때 허리에 찼던 납덩이처럼 누구나 한 허리는 납덩이를 달고 산다. 물 밖에서도 물숨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이승에 머물고 있는 한 우리들은 온갖 유혹에 흔들림 없이, 물숨을 먹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 숨을 남기고 과감하게 돌아서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본 전봇대가 해녀들의 빗창으로 보이고 가로등 불빛이 태왁처럼 둥둥 떠 있는 게 마치 바다 속 같아서 나도 모르게 터지는 숨비소리...

끝으로 영화 '물숨'의 마지막 자막처럼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를 함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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