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지는 제주도민들에 광장을 허하라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혼이 비정상'인 주연배우들이 활약하는 이 막장드라마를 제발 좀 끝내줬으면, 하고 온 우주가 바라고 있는 듯하다.

제주에 시민 여론을 모을 수 있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점점 더욱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장소가 비좁아 참여 의지를 떨어뜨린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현재 각종 집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제주시청 일대(어울림광장과 민원실 앞 주차장, 벤처마루 앞 등), 제주도청 정문, 탑동광장, 서귀포시 일호광장(중앙교차로) 농협 앞 인도 등이다. 그러나 이 공간들이 서울시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처럼 시민들의 여론을 조성하는 광장의 기능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여성이 벽 틈 공간으로 제주시청에서 진행된 집회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재훈

광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목소리를 낼 곳이 없는 약자들은 소외되고 만다. 여론 형성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가 어려워진다. 광장이 없는 곳에서 사회 문제 및 그에 대한 비판은 TV 화면 속 몇몇 정치인들만의 일일 뿐이다. 여론 조성을 위한 광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 접근성, 풍부한 유동인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주에서 집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들은 각각 한계를 안고 있다.

집회 장소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제주시청 일대는 접근성이 좋고 유동인구가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성 천막이 들어서고, 매주 ‘강정친구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 백남기 선생이 소천한 뒤 분향소가 설치된 곳 역시 제주시청이다. 하지만 제주시청 일대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해 행인들에게 전달되기보다 안쪽으로 삼켜지는 모양새다.

4천 명도 다 담지 못하면서 제주 도민들의 소통광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제주시청 어울림 마당 일대. 집회에 참여한 도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광장에 시민들이 넘쳐 도로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사진=김재훈

탑동광장은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중심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여론의 확장성이 떨어진다. 매년 여름 전국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강정평화대행진단이 집결하고 문화제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탑동광장은 잘 기획된 대규모 집회에 특화돼 있다.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진행하는 집회는 도 공무원을 향해 주최 측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매우 적고 폐쇄적인 구조 때문에 집회 모습이 행인들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두 곳 모두 약자들이 행인, 즉 불특정다수 사람들을 향해 상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사정을 알리는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역사성이 있는 관덕정 앞 광장도, 산지천 광장도 비슷한 약점을 갖고 있다.

서귀포시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일호광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은 서귀포시 중앙교차로는 허울뿐인 광장이다. 인구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서귀포시 일호광장은 자동차에 점령된 공간이다. ‘일호광장’, ‘이호광장’ 등 서귀포시내 교차로를 몰개성적으로 표현하며 도심의 역사성을 거세한 행정 편의적 발상에 대해서는 더 비판할 것도 없다.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 서귀포시민들은 일호광장의 농협 앞에 모여 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가수들도 노래를 부를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렇듯 제주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다. 그러나 답답한 시민들은 여론 조성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꽹과리를 치고, 장구를 두드리며 걷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은 매주 금요일 서귀포 시내를 돌고, 제주시청 상가 일대를 돌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시내를 행진한다. 광장이 없으니 직접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어지러운 시국이 정리되고 전국민적 분노가 식어들면 지금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는 공간에 선 약자들은 또 다시 소외될 것이다. 제주시가 제주시청에 시민소통광장을 건설키로 했다가 취소한 해프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0월 19일 제주도의회 강경식 의원은 제주도 2016년 제2차 추경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시민소통광장 건설을 백지화한 제주시를 질타하며 제주도민들에게 소통광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주시는 시청 건축물의 가치와 역사성을 앞세웠지만 실은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을 원치 않은 것으로 본 것이다.

많은 제주 사람들이 멀리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광장이 아닌, 삶과 밀접한 곳에 위치한 광장을 누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자유도시와 관광객을 위한 삶이 아닌, 제주 사람으로서의 평온하고 쾌적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광장다운 광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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