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맺은 10년 지기 후손들도

시(詩)로서 10년지기 우정을 이어온 서귀포 출신 두 선비의 이야기가 기록된 서적이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서홍동 출신의 설계(雪溪) 오기권(吳基權)씨와 대포동 출신의 서계(西溪) 이재하(李載厦)씨 공동작품인 ‘양우상화사운집(兩友相和社韻集)’이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다.오문복 제주동양문화연구소 소장이 공개한 이 책자는 일제시대인 1933년 만들어졌는데 오씨와 이씨 두 사람의 창작시들로 채워져 있다.대부분 시들은 하나의 제목을 놓고 두 사람의 개성에 맞게 각각의 시를 지어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그 주제는 세시풍속및 일제시대 주민들의 어렵고 고단한 삶, 현대 물질문명등을 소재로 다양하게 선택됐다.특히 두 사람은 시를 통해 쌓아온 10년지기 우정을 후대에도 계속 이어줄 것을 당부해 보는 이들로 부터 애틋함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군(이재하)이 지은 시와 함께 적어 가보로 전하면서 우리 자손들에게는 글의 종자가 끊기지 말았으면 다행이겠다.(중략) 나와 서계(이재하의 호)의 후손들은 대대로 친히 지내어 서로 잊지 말지어다.”라고 밝혀져 있는 것이다.또한 서문을 통해 볼때 두 사람은 당시 ‘서홍사숙’이라는 일종의 개량서당 교사들인데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시를 짓고 즐기는 선비들의 전통풍속이 사라져 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학교일이 끝나면 각자 시를 지어 연륜있는 선비에게 논평을 듣기도 했고 제주 성내 화산 김홍익씨로 부터는 교정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오문복 소장은 “이번의 공동창작집 외에 서계집이 발견되긴 했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나 시가 조사된 적이 아직까지는 없으며 이 두사람의 이후 행적및 후대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없다”고 말했다.또한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지만 시로서 낭만을 키워갔던 당시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대신했다.▲소분(掃墳)△설계 오기권 해마다 선산에 벌초를 하는 때는가을에는 8월달 봄에는 3월달손수 심은 소나무는 끊임없이 자라게 하고정성된 마음으로 막혀 있는 가시를 베어낸다.성씨마다 제각기 있는 힘 다하는데근본을 잊는다면 어찌 사람이 부끄럽지 아니할까.저물녘 일을 끝내고 하직하는 절을 올릴땐대수(代數)에 따라 스스로 차례대로 선다.△서계 이재하거친 풀 푸른 빛이 온산에 가득매년 팔월이 되면 호미로 베어내네.뿌리를 찾아 계승함은 정말 아름다운 일선조를 받드는 성의를 어찌 막으랴.선령에 잔을 올리면 응당 강응이 있고옛비석에 이끼를 걷어내면 글자가 분명 일을 마치고 의관을 차려 절을 올릴땐형 동생 아저씨 조카 차례로.<번역 오문복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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