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오인태 시인의 <시가 있는 밥상>
참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문명은 날마다 낯선 것을 세상에 내놓고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가려니 발걸음은 늘 바쁘다. 혹시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할까 하는 조바심이 삶을 지배한다. 근심과 두려움의 시간, 따뜻한 인간성과 건강한 관계가 절실하고, 삶을 함께 할 사람이 그립다.
이 삭막하고 허기진 세상에 따뜻한 밥상으로 대중을 위로하는 시인이 있다. ‘밥상 차리는 시인’으로 유명한 오인태 시인이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거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진주교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89년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됐다. 이후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내다 1994년 교직에 복직되었다. 남해교육지원청 장학사로 근무했다.
‘시야 밥먹고 놀자’라는 이름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독자들에게 시와 밥상을 소개했다. 밥을 같이 막는다는 건 삶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식구(食口)’를 복원하고 싶은 마음에 날마다 밥상을 차렸다.
시인이 밥상을 차릴 때는 나름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우리 땅에서 난 식재료를 쓸 것, 최대한 조리과정을 짧게 할 것, 조미료는 적게 쓸 것 등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준 음식 맛을 복원하려는 의도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희망을 상실한 대중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에 저녁밥상을 소개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평온을 회복하자는 메시지였다. <시가 있는 밥상>(인사이트북스, 2014)는 오인태 시인이 페이스북에 담은 사진과 시를 모아 엮은 책이다.
책은 전체 60장으로 구성됐다. 매장마다 밥상을 담은 사진 한 컷과 시와 산문 한 편씩을 소개한다.
시인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아 8번째 장을 소개한다. 오이냉국, 쏙 된장국, 가지전, 호박달전, 마늘쫑 김치 등 정갈한 음식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집’이라는 짧은 시 한편을 소개했다.
손에 든 꽃이 무색해라
일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저기 꽃보다 환한
불빛
그리고 시인은 묻는다. 일마치고 돌아가면 몸과 마음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지. 더 늦게 귀가하는 이를 위해 국을 몇 번이고 덥히는 사람이 있는 그런 집이 있는지.
시인은 저녁이면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한 식구임을 확인하던, 그런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밥상머리 담론은 ‘실종과 부재의 시대’를 우회하는 시인의 방편이고, 새로운 소통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시인에게 밥상이란 시, 인문정신, 집, 저녁 등 현대가 잃어버린 네 가지를 복원하는 염원의 결정체다.
밥상을 잃어버린 시대, 우린 대신 무얼 얻었을까? 오늘 저녁 밥상을 차려야겠다. 건강한 공동체의 복원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