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비행장에 격납고 안에 설치된 조형물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전쟁·학살·재난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는 역사·교육관광으로 반성과 교훈을 얻는 목적을 지닌 특별한 관광의 형태를 일컫는다. 특히 학살, 죽음, 전쟁처럼 비극적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진 장소에 대한 방문이 주가 된다. 책속의 역사가 아닌 실제 눈앞의 비극적 현장을 바라보면서 역사의식을 고양하는 의미가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단순 휴양형 관광을 넘어 보편적인 감성적 유대를 이끌어낸다.

다크투어리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과오를 응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와 전쟁 등의 참화가 빚은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며 인류의 과오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다크투어리즘은 국가의 폭력과 과오를 감추기보다 공개하고 깊은 반성을 통해 미래 세대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해외에서는 유네스코 세계 유형 유산 목록으로 등재하며 그 교육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세계적인 관광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 유산 관광과 교육의 형태가 결합된 다크투어리즘에 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휴양형 관광에 이어 생태관광이 부각되고 있는 제주에서도 다크투어리즘이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제주4.3평화공원과 곳곳에 산재한 제주4.3 관련 유산을 돌아보며 당시의 참상을 회상하고 애도하는 것이 제주 지역 다크투어리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 지역에서는 아픈 기억을 묻어두기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다.

침묵해야 했던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련 자료는 부족하고 현장 정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 잔재 유산들과 4.3 유적의 경우 현장을 찾아가보면 간략한 입간판 정도를 볼 수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역사 유산 해설사는 기대할 수 없다. 관광객들에게 제주의 역사 유산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관광객들에게 관련 내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를 취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혹여 관심이 있는 관광객들이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싶어도 별다른 방안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당연히 관광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없다. 

다양한 경험과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제주 관광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주도가 단순히 보고 즐기는 휴양형 관광 산업이 정점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제주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관광 형태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다크투어리즘은 해당 유적이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찾아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관광 형태가 아니다. 현장 보존과 탐방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설 정비와 지속적인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체계적인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시스템 또는 전문적인 해설사가 필요하다.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제주 지역 내에서도 다크투어리즘과 관련한 연구들이 진행되고는 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2013년 ‘제주지역의 다크투어리즘 현황과 활성화 방안’(문순덕 책임연구원)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인류 역사상 전쟁을 겪은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과 참상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여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공존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다고 전세계적인 다크투어리즘의 경향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 중국의 패권주의, 동북아 지역의 영유권 분쟁 등은 새로운 군사적 긴장과 대결, 전쟁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이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고 파괴하기 때문에 사전에 적극적으로 예방하여야 할 것”이라며 다크투어리즘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도 다크투어리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군산시다. 군산시는 다크투어리즘 개념과 원도심 살리기 사업을 동시에 접목시켜 진행하고 있다. 일제시대의 건축물을 살펴보고 그에 얽힌 역사들을 설명하는 군산역사문화탐방 지도사를 운영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이 나서서 역사문화 탐방 관련 연간 계획을 꾸리고 체계적으로 발전 시켜나갈 방침이다. 다양한 역사 유적을 갖고서도 아직 다크투어리즘 관련해 한 발자국도 못 뗀 제주로서는 배워야 할 점들이 많다.

제주도에는 4.3 유적지, 일제 군사시설, 삼별초의 항몽 유적 등 다크투어리즘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그러나 제주 행정 당국은 이에 대해 제대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가령 일제 군사시설들의 경우, 외부로 드러나 있는 방공포 진지 등을 제외하면 일반 탐방객들이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시설이 없다. 관계자에게 문의해본 결과, 모니터링 중이라는 답을 받았지만 사실상 관리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로 유적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역사 유적에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경우 유적 훼손 및 안전사고가 예상된다.

이처럼 다크투어리즘은 일반 관광과는 형태와 분위기가 다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제공과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또 상업적 접근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서귀포신문>은 이러한 관점들로 제주에 남아있는 일제 유산 점검을 시작으로 4.3 유산들을 살피며 제주 지역의 다크투어리즘의 가능성과 그 현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선 제주 전역에 산재한 일제 유산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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