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최열의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제주도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면서도 섬의 풍광은 하와이 열도의 한 조각을 옮겨놓은 것처럼 독특하다. 해안에는 푸른 바다가 검은 현무암과 대비를 이루고, 동백나무나 야자수 나무가 줄지어 방문객들을 맞는다.
섬은 신생대 플라이오세말부터 진행된 약 200만년 동안 반복된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에 속히 아직도 화산활동의 흔적이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여지껏 섬을 빚어낸 마그마가 식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땅위에 돌들이 굴러다니고 흙은 드물다. 민초들은 그 척박한 땅을 터전삼아 오름과 바다에 의지해 고단할 삶을 이어왔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섬에 기원전 300년경에 탐라왕국이 세워졌다. 12세기 들어 고려에 편입될 때까지 탐라는 백제와 신라, 중국, 왜, 유구(지금의 오키나와), 안남(베트남) 등 주변국들과 교류하면서 독립국을 유지했다.
원(몽골) 제국의 침입할 당시는 삼별초와 고려관군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다. 삼별초가 패배한 이후, 원제국은 섬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다루가치를 파견해 100년 동안 민초들을 지배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 섬은 약탈과 유형의 땅으로 전락했다. 조선 조정은 제주말과 귤을 포함해 오만가지 진상품을 요구했고, 남해안을 주름잡던 왜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노략질했다. 조정이 파견한 군대는 민초들에게는 한없이 거칠었던 반면, 왜구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수많은 정객들이 제주로 유배되었다. 유배는 순탄했던 인생행로의 단절이자 익숙한 모든 것과의 결별이다. 연중 강한 바람이 불고, 토질이 척박해 늘 식량이 부족하던 이 섬은 자연스럽게 유배라는 악형의 땅으로 자리 잡았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던 해에 고려 대제학 한천이 제주에 유배된 것을 필두로 200여 정객이 제주에 유배되었다. 거기에는 광해군과 충암 김정, 동계 정온,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등 당대를 대표하는 거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유배정객들 외에도, 이 황량한 섬에 지방수령으로 머물다간 이도 있다. 그리고 드물게는 여행을 다녀간 이도 있고, 표류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들도 있다.
섬과 낯선 조우를 경험한 자들은 그 독특한 체험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백호 임제의 <남명소승>,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 청음 김상헌 <남사록>, 이건의 <제주풍토기>, 이증의 <남사일록>, 이형상의 <남환박물> 등은 모두 별천지를 경험한 조선 사대부들이 남긴 기록들이다.
그리고 섬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치 사진처럼 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이익태 목사의 <탐라십경도>와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는 이 섬을 전쟁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중국을 공습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알뜨르비행장을 만들었고, 패망 직전에는 카미카제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섬 해안 구석마다 진지동굴을 뚫어 생체기를 냈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는데 미군정과 대한민국 군은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인한 학살을 이 섬에서 자행됐다. 무고한 주민 3만 명 이상이 희생당한 4·3의 비극은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렇게 이어진 착취와 저항의 팽팽한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서해문집, 2012)은 <탐라십경도>와 <탐라순력도>를 들고 과거 제주산천과 인문 속으로 들어가는 기행이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옛사람들이 남긴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현재 이 섬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저자의 말이다.
나의 순력은 그림이란 창문을 통해 본 풍경을 따라 이뤄졌고, 그 풍경에 담긴 자연과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오랜 여행이다.
저자가 섬 밖에 사는 사람이라서 순력의 시작은 제주해협을 건너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옛 정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화북포구나 조천포구에 발을 딛고 동쪽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별방(하도리)과 성산을 지나 성읍에 이른다.
그리고 남해를 마주하는 서귀포. 저자는 서귀포에서 이중섭을 떠올리고, 범섬에서 원의 목호와 최영의 군대가 치른 전쟁을 되새긴다. 정방폭포에 이르러서는 <탐라순력도>의 ‘정방탐승’을 통해 폭포를 들여다보고, 이원진의 시 ‘정방연’을 읊조린다. 그리고 강정마을에 이르러 구럼비 바위의 통곡을 주민들과 더불어 가슴아파한다.
순력의 길은 그렇게 이어져 안덕계곡을 지나 송악산과 산방산에 이른다. 그리고 자연히 추사 김정희을 떠올리고 추사체가 잉태될 수 있게 도와준 이상적의 의리에 감탄한다. 대정들녘에 이르면 <탐라순력도>의 ‘모슬점부’를 펴고, 알뜨르 비행장을 한탄한다. 그리고 섯알오름과 백조일손 묘역에 스민 통곡과 절규를 기억한다.
그렇게 순력의 길은 애월을 지나 항파두리를 거쳐 용두암에 이른다. 저자는 그 순력 가운데 “그림 저 바깥의 풍경이 숨을 쉬면서 움직이는 가운데 말을 걸어옴을 느낀다”고 했다.
역사 속에서 착취와 수탈이 점철된 섬이고, 격변기마다 ‘바람이 타는 섬’이었다. 통곡은 검은 대지위에 켜켜이 퇴적됐고 바닷물은 시리도록 푸르다. 이 섬을 순력하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그 고단한 순력을 기꺼이 기록으로 남겨준 저자에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