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준비하는 중문오일시장

중문오일시장 입구.

매화와 동백꽃, 복수초, 수선화, 목련 등 봄을 알리는 전령들이 섬에 상륙했다. 그리고 유채꽃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시절, 그 황홀한 봄의 향연을 함께 맛보기 위해 지난 18일과 19일, 서귀포유채꽃국제걷기대회가 열렸다.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난장을 벌였다.

유채꽃걷기대회가 열리는 18일이 마침 중문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잔치의 여흥이 가슴에서 채 가시지 않은 채 오일장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주도로가 개설되면서 중문 일대에 사람의 출입이 원활해졌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대거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인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물자의 교류가 늘었고 장이 형성됐다. 1965년에 이르러 정식 오일시장으로 등록됐다.

1999년부터 오일시장 현대화 사업이 추진됐다. 부지가 확보되고 장옥이 신축됐다. 현재 대지면적 6,770㎡이고, 사업장 면적 4,653㎡에 점포가 들어섰다. 1300여㎡에 34면의 주차 공간을 갖추고 있다. 현재 상가 21개에 상인들이 입점해 영업을 하는 상태다. 장은 3일과 8일마다 열린다.

인근 중문관광단지가 유채꽃걷기대회와 전기자동차엑스포로 사람이 붐비는데, 중문오일장은 한산하다. 입구 어물전에만 주부들이 모였고, 잡화나 과일을 파는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주말에도 한산한 걸 보면, 시장이 침체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물전에 사람이 모였다.
장옥 안이 전체적으로 한산하다.

장을 둘러보는데, 그릇가게에 눈에 띠는 물건이 있다. 초등학교 때 쓰던 것과 똑같은 추억의 양철도시락이다.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5000원 주고 하나 샀다. 물건 값을 치르는데 사장님 말투가 독특하다.

그릇을 파는 한아무개(59) 사장님은 중국 조선족으로 마흔 살 즈음에 한국에 시집을 왔다. 결혼을 해보니 남편은 너무 가난했는데, 전처 사이에 낳은 3자녀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시집을 잘 못 왔다.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며 안쓰러워했다. 그런데 남편은 법 없이도 살 만큼 너무 착한 사람이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아끼며 키웠다.

한 사장님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남의 밭에 가서 일을 해도 일당이 3만원이고, 장사를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도 있었다. 남편과 함께 제주·중문·한림 오일시장을 다니며 열심히 그릇을 팔았다. 장에서 주문을 받고 장이 끝난 밤중에 손님 집으로 배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 교육도 다 마치고 혼례도 다 치렀다. 그리고 틈이 나는 대로 결혼이주여성들을 돕는 상담역할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건강을 잃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 아이들이 자신을 잘 따르고 있어서 친자식 삼아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그릇가게도 큰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본인이 낳은 막내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형들을 잘 따르며 지낸다.

중문오일시장에서 그릇을 팔고 있는 한아무개 사장님. 조선족으로 마흔 언저리에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이다.

장을 나서는데 상인들 몇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잡화와 옷을 파는 사장님 셋이 “손님이 없어서 놀고 있다”고 했다. 얘기 끝에 중문오일장 이전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서귀포시는 3월부터 9월까지 사업비 5000만원을 들여 지역적 특성을 살린 전통시장 육성을 위한 ‘중문오일시장 이전 타당성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추진하는 중이다. 중문오일시장이 장기적 침체상태에 있고, 교통체증으로 주민들의 불편까지 초래하면서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귀포시청 지역경제과 담당자에게 자세한 상황을 들었다. 담당자는 “중문 인근 4개 마을 주민과 중문청년회, 상인 1인 등이 모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

상인들은 “고성·애월 오일시장이 이전 후에 폐장됐다”며, “오일시장을 이전하면 그나마 오던 손님들도 불편해서 못 온다”고 걱정했다. 지금 위치가 비좁기는 해도 인근에 주택가가 있고 버스가 자주 다니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찾아올 수 있는데, 옮기면 할머니들이 못 올수도 있다고 했다.

상인들의 우려를 시청에 전했더니, 담당자는 “상인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부지도 넓고 교통이 편리하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천제연 입구로 정한 거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차례 설명을 드렸는데 바빠서 참석을 못한 상인들이 있다. 상인회가 조직되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데, 앞으로도 상인들과도 부지런히 소통하겠다”고 했다.

서귀포시가 대체부지로 지정한 곳은 일부 한국관광공사 소유(2만4000㎡)이고, 일부는 사유지(4필지 5132㎡)다. 관광공사와는 관광지와 재래시장이 더불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차원에서 무상임차에 대해 교감한 상황. 나머지 사유지를 매입하기 위해 예산 16억 원을 확보하고 토지 매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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