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집무실 '포기'한 문 대통령, 직원들과 '밀착 소통'... 경호원들 '조마조마'

<오마이뉴스> 글: 이주영(imjuice) 손병관(patrick21)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기 전에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일정팀장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서실장님 시간 되시면 잠깐 보자고 하세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실에 직접 전화해 건넨 말이라고 한다. 인터폰으로 내선 번호를 눌러 임종석 비서실장과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비서실 직원이 대신 받자 용건을 남겼다는 얘기다.

임 실장과 수석비서관, 실무직원들이 일하는 여민1관 사무실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이 수시로 울린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임 실장이나 수석들을 집무실로 부를 때마다 비서진의 도움 없이 손수 인터폰 수화기를 들어 호출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집무실 인터폰에서 숫자 '0번'을 누르고 경내 전화교환원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참모에게 연결을 부탁한 적도 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전화가 올 때는 수석들 전화에 비해 벨소리가 두 배 더 큰데다가, 수시로 울리다 보니 일하다가 깜짝깜짝 놀란다"라며 "청와대 전화교환원을 통해 대통령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있다. 그 교환원들도 대통령 전화를 직접 받기는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서진과 한 건물에서 근무, 한국판 '웨스트윙' 된 여민관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기 전에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일정팀장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 본관이 아니라 비서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으로 출근한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약속한 그는 2019년경 정부종합청사에 새 사무실을 마련하기 전까지 여민관 3개동 중 1관 3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일하기로 했다. 참모들과의 거리를 좁혀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여민관 집무실은 본관 집무실과 규모차이가 크다. 입구부터 책상까지의 거리만 15m에 이르는 본관 집무실에 비해 여민관 집무실이 훨씬 좁다. 파면된 박 전 대통령도 여민관 집무실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3층 집무실은 그 동안 많이 쓰지 않던 공간이어서 바로 아래층에 있는 비서실장실보다 업무 환경이 좋지 않다"라며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곳으로 매일 나와서 내선번호를 직접 눌러 비서실장과 수석들을 바로바로 호출해 보고를 받거나 토론을 한다"라고 전했다.

청와대 본관과 여민관은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대통령과 참모들의 물리적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본관 집무실과 관저 두 곳 모두에 서면보고를 한 게 대표적 사례다.

비서실장조차 대통령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박근혜 정부 시절과 달리 '문재인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여민관에서 직원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직접 주고받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실은 12일 대통령이 여민관으로 처음 출근했을 때 직원들의 계단 사용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해제돼 대통령과 직원들이 한 건물에서 자유롭게 어울리게 됐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보통 오전 9시에 임 실장 등에게 수석비서관 회의 결과와 일정 등을 보고 받은 뒤 수석들을 수시로 집무실에 불러 접촉한다. 이에 따라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비서관 회의는 취임 이후 평일 오전 8시경, 주말 오전 9시경에 매일 열려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서 대통령 업무지시 사항이나 일정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수석들과 토론하는 와중에도 비서들이 보고할 내용이 있으면 중간에 들어가서 말씀드릴 수 있다"라며 "자유롭게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가장 잘 아는 분이 대통령"이라며 " '똘똘한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내부 구조도 잘 모르는 '어리바리'한 스텝들이 함께 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비서진과 밀착 소통하며 국정을 운영해가는 문 대통령은 취임 9일째인 18일까지 대선 공약 위주로 공개적인 업무지시를 다섯 차례 내렸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등 '굵직한' 현안들도 속전속결로 지시해 눈길을 끌었다.

차에서 내려 청와대 견학 초등학생들과 단체사진 찍기도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에서 열린 '미세먼지 바로 알기 교실' 행사를 마친 뒤 학교를 떠날 때 학생들이 문 대통령에게 사인공세를 펴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과의 소통 행보도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찾아가는 대통령' 행사를 두 차례 열며 현장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12일에는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사 직원들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강조했고, 15일에는 서울 은정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학부모들에게서 미세먼지 관련 고충을 청취했다.

미리 짜둔 동선을 벗어나 즉흥적으로 시민에게 다가가는 풍경도 자주 연출됐다. 은정초 방문 당시에도 모여든 초등학생들과 사진을 찍어주거나 사인을 해주는 장면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돼 '파파미(파도 파도 미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도 문 대통령이 국방부 방문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오는 도중 견학 중인 초등학생들을 보고는 중간에 차에서 내려 함께 단체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서 그동안 해온 말씀이 가식이 아닌 진심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몸에 밴 태도"라며 "힘은 들지만, 대통령이 워낙 기분 좋게 일해주니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 쪽에서는 "솔직히 조마조마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생후 3일 만에 아버지 잃은 김소형씨,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8일 오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장에서 공연을 마친 유족 김소형씨를 대통령이 뒤쫓아가 포옹했을 때 의전·경호 파트에서는 '악' 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이 부르는 데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등을 보인 채 걸어가는 것은 이전 정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서갑원 전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외부 행사에서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은 사전에 다 정해지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나올 수가 없다"며 "비극을 겪은 유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측은지심이 드러난 결과 아닌가? 노 대통령 시절에 이미 '열린 의전'을 지향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보다 몇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 뒤 오찬 자리에서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오늘 경호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시민들은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말하자 주 실장은 "대통령과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안전 경호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의 인기를 반영하는 듯 문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1.6%에 이르렀다.지난 주 대비 6.8%p 상승한 수치는 당선 직후 이명박 대통령(79%), 박근혜 대통령(64%)의 지지율에 비해서도 꽤 높은 편이다(리얼미터 15~17일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 이 기사는 바른지역언론연대와 <오마이뉴스>와의 기사제휴 협약에 의해 옮겨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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