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똑같은 시간 흘러가지만 부

시간을 분별하면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으로 대변할 수 있다.물리적인 시간은 하루를 24시간 또는 일년을 365일로 나누어 지나간 시간을 과거, 지금 목전의 시간을 현재,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미래라고 구분하여 말한다. 그리고 심리적 시간을 마음의 흐름에 따라 구분하는 시간을 지칭한다.조용히 흘러오고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길고 짧음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갔는지를 알 수 있으나 때에 따라서는 순간이 벌써 30분이나 1시간이 지났음을 알게 된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은 1년이 10년이요, 좋은 시절은 10년이 1년으로 느껴지듯이 보는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신축이 자재하다. 이것을 심리적인 시간이라 한다. 어쩌다 내가 대상과 하나가 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한 체험을 들면 독서삼매에 빠진 때는 시간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렇게 관찰해보면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것도 다름 아닌 심리적인 시간이요, 주관적인 시간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금강경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을 말하고 있다. 지나간 것은 과거이고 지금 여기는 현재이고 오지 않은 것은 미래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현재라고 해서 현재를 찾아보면 이미 과거로 사라졌고 또한 현재는 이미 미래로 간다. 그래서 현재를 찾을 길이 없다. 현재가 없는데 어떻게 과거와 미래가 있는가 다만 가설적으로 나누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고 했을 뿐이다.분명 시간의 본질은 공(空)하다. 그러나 현실로서는 인연이 있는 한 가립으로서 시간은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시간이 아니므로 이름이 시간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시간의 본질이 비록 공하다 하지만 객관적 현실재로서의 시간은 분명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강물을 바라보며 ‘물이여! 물이여!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하고 탄식을 했다지만 물의 흐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가고 있다. 한 번 발을 씻은 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은 물이라 그저 유유히 흐를 뿐이다. 시간을 두고 말하더라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결코 어제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내일과 뚝 떨어져 오늘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이 ‘어제를 등에 업고 내일을 뱃속에 넣은 오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하루하루는 두 번 반복되지 않은 절대적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귀중한 것이 있다면 이 하루하루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우리는 우리들이 밝고 서 있는 존재의 자리를 정획히 성찰(省察)하면서 그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의 절약이 요구된다. 우리는 일회적(一回的)인과를 받고 이 땅에 태어났다. 두 번 있을 수 없는 생이요, 누가 나를 대신하여 살아 줄 수 없는 생이다. 마침내 내가 스스로 나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독한 생이다. 여기에 시간이 유일성(唯一性)이 있다. 이 지상에서 오직 한 번 밖에 없는 바로 지금의 이 시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하게 소중한 것이고 끝없이 엄숙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유일성의 자각은 나라고 하는 존재의 무한가치(無限價値)를 인식케하여 나로 하여금 스스로 가치창조의 보람에 살게 한다. 보라 눈보라치는 겨울을 넘어서 죽은 성싶던 대지에 풀잎이 돋아나고 있으며 시간이라는 것도 또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낳아주기도 하고 모든 것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오직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을 지배하여 만사를 이루기도 하고 만사를 놓쳐 버리기도 한다. 참으로 시간을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없는 상대로 초월하여 절대적인 존재로 무한한 창조성을 지닌 것이 시간의 정체임을 분명히 알고 하루하루를 긴요하게 살 일이다.여기에 권학문을 소개하여 끝을 맺고자 한다.‘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금년에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해와 달이 가는지라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슬프다 늙었도다 이 누구의 허물이냐’ 되풀이 말하자면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오늘이요 바로 이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부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인생사며 역사가 엮어지는 것이다. 오남련/논설위원·전 서귀포교육장 제257호(2001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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