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위해 이주한 아버지들, 21일 야구장에서 만났다

‘더럭 파더스(The Luck Fathers)’와 ‘이시 파드레스(EC padres)' 선수들.
오른쪽이 더럭 파더스 '이윤의 선수'이고, 외쪽이 '이시 파드레스'의 김민우 선수다.
경기 전, 두 팀이 만났다.

몇 해 전 교육방송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엘 구스토(El Gusto)'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엘 구스토는 알제리 어로 ‘취향 또는 취미’라는 뜻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단의 명칭이기도 하다.

영화는 알제리 전쟁과 저지대에서 샤비 음악을 연주했던 오케스트라 ‘엘 구스토’를 조명했다.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도시 카스바는 파괴되고 인민들의 삶은 상처로 얼룩졌다. 같이 음악을 했던 동료들은 전쟁으로 인해 인근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영화감독의 제안으로 악사들은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다. 본인들이 고국에서 연주했던 샤바 음악을 수십 년 만에 다시 연주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감동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전쟁의 상처와 세월의 장벽 앞에 음악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는 “당신의 ‘엘 구스토’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알제리 악사에게 샤바 음악이 ‘엘 구스토’라면 야구를 '엘 구스토'로 삼아 생활을 지탱하는 마니아들이 있다. 이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운동장에 모여 어릴 적 이루지 못한 꿈과 만난다. 야구는 단지 취미가 아니라 추억이고 열정이다. 서귀포에는 20개 야구동호인 팀이 시즌 내내 경기를 벌인다.

지난 21일 오전 서귀포시장기 야구대회가 열리는 서귀포시강창학야구장에서 이색적인 두 팀이 만났다. 어쩌면 비슷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더럭 파더스(The Luck Fathers)’와 ‘이시 파드레스(EC padres)'가 경기를 펼쳤다.

‘더럭’은 애월읍 상가리와 하가리를 포함하는 옛 지명이고, 더럭분교는 두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다. 몇 해 전 더럭분교의 아름다운 교정이 TV광고에 소개되면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이 학교에 등록시켰다. 폐교 위기의 분교가 학생수 80명이 넘는 학교가 됐다.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이주민이어서 이주민과 토박이, 이주민과 이주민끼리 어색한 관계가 지속됐다. 야구단 더럭파더스는 이런 환경에서 창단된 팀이다. 아버지끼리 모여 운동을 하다 보니 소통도 잘되고 서로 의지도 된다.

이윤의씨(39)는 4년 전에 인천에서 하가리로 이주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과 유치원생인 딸을 더럭분교에 전학시켰는데,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행복하니 엄마와 아빠도 이곳 생활이 만족스럽다.

원래 야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생활에 바쁘고 야구장이 부족해 야구를 자주 할 수 없었다. 제주에서는 시간도 나고 야구장도 많아 매주 경기를 할 수 있다. 물론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는 어디에서든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래도 야구장에 있는 시간 동안은 잠시 세상일을 내려놓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시 파드레스(EC Padres)'는 영어교육도시에 자녀들을 보낸 아버지들이 모인 야구단이다. EC는 영어 이니셜로 ‘교육도시(Edu City)'를, ’Padres‘는 스페인어로 아버지들을 뜻한다. 영어교육도시 내에 있는 NLCS와 BHA, KIS 등에 자녀를 입학시킨 아버지들의 모임이다. 학교 부모님들의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나누다가 야구팀 결성에 합의했다.

영어교육도시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부분 근처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생업 현장이 다른 시도에 있는 경우, 아버지들은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생활을 하는데, 주말에는 주로 가족들과 제주에서 지낸다. 주말에 제주에 있다 보면 취미활동이 필요해서 선택한 게 야구다.

‘이시 파드레스(EC padres)’ 주장을 맡고 있는 김민우씨(46)는 해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다가 그만두고 아이 교육 때문에 제주로 이주했다. 아들이 KIS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비가 많이 들어 솔직히 힘들기는 하다”고 말하면서도,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고 자녀 교육에 관한 문제기 때문에 도와줘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준비해둔 부동산이 있어서, 농장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우씨는 어릴 적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운 이후 30년 동안 야구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제주에 온 후 야구 글러브를 다시 끼게 돼서 너무 기쁘다. 팀에서는 내야수를 맡고 있다.

세상은 치열한 경쟁터이고, 삶은 비애로 넘쳐난다. 아버지들은 험한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 바람 맞고 서있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치열한 경쟁을 피해가기를 바라기도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기대도 한다. 그 소망과 기대의 종점에서 제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 야구하기 좋은 서귀포가 있어서 아버지들이 뭉쳤다. 이들은 야구하는 아버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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