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 / 시조시인

 제주에서는 오월이 되고, 보리가 노랗게 익어 보리타작을 할 무렵이면 작지만 통통한 살집에 뼈가 강한 ‘자리돔’을 먹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몸살을 앓는다. ‘옥돔’과는 전혀 다른 생선이지만 여름을 시원하게 당기는 밥상의 별미 ‘자리돔’은 제주 사람들의 쏘울 푸드 중 당연히 갑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전국의 맛 집을 소개하는 요리 중계 쇼 「백종원의 3대 천왕」에도 뼈째 먹는 자리물회를 제주도의 7대 진미 중 하나라며 소개가 되면서 자리돔으로 만든 자리물회를 잘 모르던 국민들이 방송을 접하고는 올레길 체험과 자리물회를 한꺼번에 즐기려고 이맘때 제주여행을 선호한다니 참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도 근해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칼슘과 단백질, 지방이 풍부해서 물회, 강회, 구이 등 다양하게 조리해서 먹고 있는데 자리돔 마니아들은 어두일미라며 살아있는 자리돔 머리를 통째로 된장에 찍은 다음 제피(초피나무)잎을 얹어 씹어 먹는걸 즐기기 때문에 그 모습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놀라는 게 당연하다.

오월에 자리돔을 사다가 젓갈로 담그면 일 년 내내 밥상위에서 즐길 수가 있다. 서귀포 위미리에서 나고 자란 제주의 대표적인 시조시인 오승철님의 ‘자리돔’이라는 작품을 대할 때면 가슴이 아리면서 보목리 마을 자리젓이 그리워진다.

잠시 소개해보면,
 
 이대로 끝장났다 아직은 말하지 마라
 대가리에서 지느러미 또 탱탱 알밴 창자까지
 한 소절 제주 사투리 그 마저 삭았다 해도 
 
 자리하면 보목리 자리 한 일 년 푹 절어도
 바다의 야성 같은 왕 가시는 살아있다
 딱 한번 내뱉지 않고 통째로는 못 삼킨다
 
 그렇다. 자리가 녹아 물이 되지 못하고
 온몸을 그냥 그대로 온전히 내놓은 것은
 아직은 그리운 이름 못 빼냈기 때문이다  

 
 

보목항 자리돔이 살아 펄떡거리는 장면.

아버지는 여름날 뙤약볕에 과수원 소독을 하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보목리 마을에 들려 포구에서 자리돔을 한바구니 사서 집에 오셨다. 소금기 절은 몸으로 쪼그려 앉아 자리돔을 잘게 썰어서 자리물회를 손수 만드셨고 가족들과 함께 둘러않아 시원하게 먹었다.

난 재피 잎을 따는 담당이었고, 어머니는 물회에 들어갈 야채들을 담당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사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리물회에 들어간 자리돔 뼈가 자꾸 목에 걸려서 아버지가 아무리 잘게 썰어주셔도 자리돔은 못 먹고 야채와 국물만 먹었었다.

아버지는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그 다음해 오월이 오자 이상하게 자리물회가 당겼다. 아마도 아버지의 자리물회가 그리웠나보다. 대부분 점심식사는 보목리 포구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일주일에 2~3번은 꼭 먹었던 것 같다. 아버지 생전에는 목에 걸려 못 먹었던 자리돔이 그때부터는 이상하게도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자리물회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식당 문을 나서면 속이 다 후련했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아버지 냄새와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왜 자리물회를 좋아하셨을까? 무거운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은 시간이 아마도 자리물회 한 그릇을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그 시간이었나보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셨나 보다. 왜 항상 뒤늦은 깨달음에 가슴을 쳐야만 하나... 음식은 추억이고 음식은 사랑이다.

올해 자리돔은 매우 귀한 몸이다. 높은 수온 탓에 어획량이 많이 줄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자리돔 가격이 너무 올라서 제주도민들은 울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도 어김없이 맛과 흥이 어우러지는 제17회 보목 자리돔 축제가 6월 2일부터 4일까지 보목포구 일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제주 관광을 준비하는 분들은 이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자리물회가 부담스럽다면 자리돔 구이와 제주막걸리 세트를 권한다. 섶섬, 문섬, 범섬이 그림처럼 떠 있고, 고소한 자리돔과 생 막걸리가 입 안 가득 퍼지면 세상은 참 아름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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