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7]

지난주에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일하고 있는 무릉외갓집을 방문했다. 중문에서 열린 국제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에 오셨다가 로컬푸드 포장도 함께 하고 점심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통령은 농산물의 판로 확보에 대한 어려움을 공감하셨고 마을 청년회장의 농산물 가격 안정에 대한 건의도 귀담아 들으셨다.

농업·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마을을 방문하신 건 아니지만 지역의 농촌마을을 취임 후 첫 방문하신지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듯하다. 대통령은 왜 제주의 작은 마을기업을 찾아왔을까?

2009년 무릉2리와 사단법인 제주올레, 벤타코리아는 농업·농촌의 새로운 실험에 들어간다. 1년 치 선불을 받고 제주의 신선한 농산물을 매월 정기적으로 배송한다면 판로가 어려운 농민에게 도움이 되고, 도시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가격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식탁까지 공급받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닌가. 그렇게 만들어진 무릉외갓집이 올해 9년차로 현재까지 매달, 총 91번 배송되었다. 지난해에는 매주 농산물 배송서비스를 인근 국제학교 선생님들께 진행할 정도로 사업이 성장했다.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누가 438,000원을 선불로 내고 바다 건너 얼굴도 모르는 농부의 농산물을 구입하려 할까? 벤타코리아 김대현 대표의 열정과 제주올레가 전해주는 신뢰가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다. 농산물 생산과 포장은 또 어떠한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마을 공동체의 일이니까’ 하며 양보해준 조합원들과 내 일처럼 외갓집 일을 챙긴 여성 농민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 일이 유지되었다.

한 달에 월급 백 만원도 못 받으며 일했던 직원들은 서울에서 공익재단, IT기업에서 나름 촉망받는 30대 청춘이었다. 이들이 연고 하나 없는 제주의 농촌에서 수 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파손된 농산물로 인해 자정까지 항의전화를 받았던 극한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욱 미스터리인 것은 ‘누가 거금을 내고 제주 농산물을 매달 받아보겠냐’고 하겠지만 이미 수천 명의 회원들이 무릉외갓집을 이용했고 그들은 아직도 우리 마을의 농산물을 최고로 여기며 애용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보다 품질이 좋은가, 인터넷 오픈 마켓 보다 가격이 싼가? 모두 아니겠지만 우리에겐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

농민들의 땀이 가까이에 있고 그들의 기쁨과 고충, 애환까지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겠지만 그 마음이 고스란히 배송상자에 담겨있기에 이 작은 마을기업이 유지 되는 게 아닐까? 모두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우린 그 동안 실패도 수 없이 했다. 나름 기대를 모았던 마을카페는 6개월도 안되어 문을 닫았고 지난해 신규 서비스를 위해 채용된 신입직원은 일 시작한지 4일 만에 그만두었다. 2014년엔 5월의 귤 카라향이 운반 중 파손되어 80상자나 재배송을 해야 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회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배송 서비스를 갱신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때마다 불안해했고 또 힘들어했다. 조합원들과 의욕적으로 밭을 빌려 심었던 감자는 체험 시기를 맞추려다 장마시즌에 수확해 한 푼도 못 건졌고, 연이은 공동 작업에 참석 조합원마저 줄어들어 ‘그냥 인부를 사서 하자’는 뼈아픈 현실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지난 세월을 수 없이 울었고 또 함께 웃으며 보냈다.

나는 대통령이 서귀포의 이름 없는 마을, 작은 마을기업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라 생각한다. 모두 함께 이 작은 곳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대통령이 바로 여기, 무릉외갓집에 오셨다. 누구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해 노력했고 그 모두가 또 행복했기에 대통령이 오셨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가 대통령이고 또 우리가 제일로 중요한 사람, VIP가 아닐까.

홍창욱 / 무릉외갓집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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