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아 / 전교조 제주지부 대의원

박명아

 제주에서부터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군산의 어느 양계장에서 사온 닭이 병에 걸려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 동물농장에 있는 닭도 읍사무소 신고 대상이 되었다. 작년에 전국의 양계장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때도 무탈하게 버텨준 닭이었다. 

 지난 목요일, 반 아이들과 닭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먼저 동물농장 바로 옆에 있는 텃밭에 들러 우리가 심은 옥수수, 가지, 방울토마토가 얼마만큼 자랐는지 살펴보고 풀을 뽑고 가기로 했다. 김매기를 하다 싫증난 몇 아이들은 닭을 보러 갔다.

 동물농장 바깥쪽에서 상추를 들이밀며 닭 구경하던 아이들이 닭장 안에서 뱀 꼬리를 보았다고 했다. 행정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벌써 뱀이 암탉 한 마리를 물어 죽인 뒤였다. 죽은 암탉은 알을 품느라 무방비 상태였던지 알 냄새를 따라 들어온 침입자에게 봉변을 당한 듯 했다.    평소에는 너무 살이 쪄서 움직임이 거의 없던 토끼들도 수선스럽게 뛰어다니고 자연부화한 지 일주일 된 병아리는 엄마 닭의 꽁무니를 쫓아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었다.

 119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뱀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119 대원들이 도착해 잡을 채비를 하는 사이 이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뜻밖의 상황에 무척 흥분했다. 뱀이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닭까지 물려 죽고, 119 아저씨들의 깜짝 방문에 닭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너무도 강렬한 느낌의 현장체험이었다.

 느닷없이 맞닥뜨린 이별이었다. 잘 준비되었다 해도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과 사의 갈림길에 삐악이가 놓여 있으니.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오싹함이 싫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대상이 동물이건 사람이건 언제나 아프다. 소, 닭, 돼지가 식재료로 단순하게 치부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닭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수롭지 않을 터이고 닭이 살처분 혹은 육계 처리가 되는 상황을 대하는 나의 이런 진지함이 생뚱맞을 수도 있겠다.  치킨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주문하는 닭튀김이 ‘치느님’이 되고, ‘1인 1닭’이 구호로 등장하는 세상이니까.

 2011년 봄에는 구제역으로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의 고통스런 비명이 전국을 뒤덮었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곧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발생 시기마다 방역, 위생 문제, 물가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계란 값이 폭등하며 엄청난 물량의 계란을 수입한다고 시끌시끌했지만 계란 수급이 안정되면서 그 또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부분의 가축들은 비참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끔찍하게 도축된 후 쉽게 먹어치우는 식재료일 뿐이다. 밥상에서는 몰랐거나 모른척하는 불편한 진실.

 우리 학교 동물농장은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동물의 삶과 죽음의 장면에도 가치와 존엄함이 있음을 생각하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동물들이 자신이 키워진 목적에 부합되게 생을 마감한다 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생명체로 존중받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동물의 떼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무신경한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밭에서 나는 식물, 농장에서 키워지는 동물들 모두 인간이 함부로 소비하고 하찮게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목숨붙이들이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내 목숨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결국 뱀은 잡히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초등학교 울타리 안에 나타난 뱀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한참을 고생했지만 성과 없이 돌아섰다. 동물농장 주변에는 약을 뿌렸고 아이들에게는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바로 다음 날, 읍사무소에서 닭을 모두 데려갔다. 그렇게 삐악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병아리 부화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삐악이가 부화기에서 태어난 지 만 2년째 되는 6월 어느 날 일어난 일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신비스런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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