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칼럼]고근산을 오르며…

오랜만에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오름 등반을 하면 산의 기를 받아서 일주일을 가뿐히 넘길 수가 있는데 요즘엔 직장이 가파 해외에 있으니 좀체 기회가 닿질 않는다. 일요일엔 도항선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엔 때마침 월요일에 행사가 있어서 넉넉한 마음으로 산을 찾은 것이다.등산로 입구에 이르니 아직도 사람들이 붐빈다. 새벽 운동 시간이 지났는데도 휴일이어서 그런지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사람이 붐비지 않는 서쪽 사면의 조용한 길로 접어들었다. 입구 표지판엔 고근산이란 유래와 396m의 높이, 시설 내용, 자연보호를 당부하는 내용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표지판을 뒤로 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숲속 어디선가 풀륫의 청아한 음색으로 짝을 찾는 멧새 소리가 즐겁다. 저 쪽에서는 더 신바람이 나서 화답한다. 나를 사이에 두고 저들만 즐기는가. 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 이리 저리 살피는데 갑자기 길섶에서 꿩 한 쌍이 푸드득 날아오른다. 내가 본 게 아니라 이미 꿩이 나를 보았겠지.외롭게 홀로 서 있다 하여 고근산이라 이름을 붙였다는데 이제 보니 결코 외로운 산이 아니다. 비록 산으로 짝을 이루진 못했어도 온갖 살아숨쉬는 자연을 품고 있으니 어찌 외롭다 할 것인가.겉으로 보기엔 밋밋하여 단조로와 보이지만 산에는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다.양지바른 언덕배기엔 연분홍 진달래가 붉게 꽃망울을 터트렸고, 바람에 날아갈 듯 하얀 잎이 연약한 너도바람꽃, 설한을 이겨낸 노란 민들레, 붉은 고깔을 쓴 광대나물꽃, 저만치 비탈에 수줍게 피어있는 제비꽃…, 여기 저기 화사하게 피어난 봄의 여신들이 고운 빛과 향기로 벌 나비를 유혹하고 있다.고개를 들어보니 등산로 주변 따라 곳곳에 ‘쭚쭚부녀회’ 라벨이 붙여진 양옥집을 매달아 놓았다. 아주 멋들어진 새집이다. 참 잘한 일이다. 새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엿보여서 흐뭇하다. 저기엔 새들이 어떻게 보금자리를 틀었을까. 몹시 궁금하다. 상수리나무 위에 높게 매달린 새집으로 오른다. 어렸을 적엔 팽나무 「폭」을 따느라 아슬아슬한 가지 끝까지 오르곤 했었는데 고작 3m의 높이를 오르기에도 힘이 부치다. 누군가 원숭이 내 모습을 보았다면 박장대소 하리라. 힘들게 올라 살금살금 다가간다. 새가 놀라 포르르 날아가버리면 어쩌나. 깃털 둥지엔 알이라도 있을까, 알록달록 예쁜 산내알! 혹시 보송보송 털옷 입은 새끼들이 먹이를 찾으러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내가 불쑥 나타나면 놀라지나 않을까. 이런 저런 상상으로 새집 안을 들여다보니, 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 혹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그런가? 오솔길과 멀리 떨어진 숲속 집엘 올라 봐도 산새알은 고사하고 벌레 한 마리 드나든 흔적이 없다. 집집마다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비둘기 같으면 얼씨구 고맙다고 으레 깃들었을 텐데 이들은 멋들어진 문화주택보다 제 방식대로의 지푸라기 집이 좋은가 보다.진정 새들을 위한 집이라면 그들에게 들어봐서 기호에 맞게 지어줄 일이지, 사람들 맘대로 지어놓고 여기 와서 살라하니 어디 뜻대로 될 일인가.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하여 자연에 대하여 오만불손하다.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다. 프랑스의 석학 알베르 자카르는 오늘날의 문명을 주도해온 경제 지상주의가 실업, 빈부격차, 자원고갈, 환경파괴 뿐 아니라 삶의 가치 등 인간관계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인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한다.자연을 소중히 하고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사람들이 큰 맘먹고 매달아 놓은 집이 새들에겐 무용지물이며 도리어 흉물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연을 생각하고 새를 보호하자는 이런 활동은 그나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멍하니 섰다가 다시 산을 오른다. 다음에 올땐 모이라도 가져다가 집집마다 듬뿍 넣어서 새들이 찾아오도록 해야겠다. 이경주/가파초등교 교장 제257호(2001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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