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

오래전에 미국에서 상담전문가들을 위한 명상캠프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6명이 참석했는데 우리는 베네수엘라 사람들과 한 팀이 되었다. 팀끼리 친해지기 위한 활동시간이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는 다같이 춤을 추기로 했다. 언어는 장벽이 있지만 몸짓에는 장벽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색했지만 음악도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의 해변가에 음향 시설이 있을 리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을 때였다. 그러나 역시 춤에는 음악이 필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흥을 돋울 수 있는 노래로 제 몸이 움직이게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미소로, 눈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 잡았는지 모르게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돌게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서로 어깨동무를 하였고 무용단처럼 앞으로 모였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면서 마치 연습된 안무를 무대에서 펼치듯이 자연스럽게 율동을 이어나갔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마치 분홍신(신으면 저절로 춤을 추게 한다는 마법의 신발)을 신은 것처럼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시간이 가면서 율동은 더 진화되어 우리는 모닥불의 형상이 되어 갔다. 10여명의 사람이 한쪽 팔을 높이 들어 손을 맞대니 영락없이 모닥불을 피우려고 세워놓은 장작 같았다. 역시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남아 있는 한 손을 앞사람의 어깨에 올리고 돌기 시작했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오-옴’이었다. ‘오-옴’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돌아가는 한덩어리의 물체, 이미 나는 개인이 아니었다.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 한 덩어리가 나요, 내가 그 한 덩어리였다. 화합프로그램이 끝나 덩어리가 풀리고 개인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며 이 신기한 현상에 놀랐음을 공감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옴’은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태초의 소리’, ‘우주의 소리’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종교를 초월한다고 한다. 우리말 ‘엄마’나 영어로 엄마라는 뜻의 ‘맘’도 이 ‘옴’과 닮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팀에는 불교신자만이 아니라 천주교, 기독교, 불교, 나처럼 무속신앙을 가진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어떤 하나로 통일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통일의 경험’을, 2017년 서귀포에서 또한번 하게 될 줄이야. 그건 ‘서귀포다움을 생각하는 시민 원탁회의’에서였다. 원탁회의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평등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뜻으로 제주어로 표현하면 ‘모다들엉 아봅서’라고 할 수 있겠다.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서귀포다움을 위한 건축포럼’이 주최한 이 원탁회의에는 50명 가까운 서귀포 시민들이 모였고 7개 조로 나뉘어 3시간 가까이 ‘무엇이 서귀포다움인가’를 논의하였다. 그 결과를 조별로 발표하는 자리, 일곱 사람이 나와서 자신의 조에서 모아진 ‘서귀포다움’을 발표하니 7개의 ‘서귀포다움’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런데 일곱 사람이 한 말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았다.

“따뜻함”

기온이 따뜻하고, 그래서 사철 푸른 잎과 꽃이 피니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따뜻하니없이 사는 가운데 조냥정신으로 살면서도 정낭 사이로 음식들이 넘나들고 이웃이 힘들면 도와주고 배려하며 어울려 살아온 것이 바로 서귀포다움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움, 황홀함, 힐링, 돌봄, 나눔, 표현은 달라도 그 뿌리는 모두 따뜻함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원탁회의 참석자 중에는 이주민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 역시 따뜻함에 동의했다. 서귀포가 더 발전하자면 보존보다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서귀포다움이 따뜻함에 있다는 것에는 반대가 없었다. 나는 여기서 서귀포의 희망을 보았다. ‘옴’이 태초의 소리이듯 ‘따뜻함’이 서귀포다움의 모태라는 것에 ‘합의’한 것도 희망이요, 이를 토대로 서귀포의 앞날을 설계하면 된다는 것도 희망이 아닌가?

서귀포에 대한 순수한 마음들이 모아낸 따뜻한 서귀포, 이런 서귀포에 산다는 것은 행복임에 틀림없다.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전 세계의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여, 오라! 서귀포로!

따뜻한 서귀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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