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제주 그리고 문화

 

“나는 한라산을 애기 때부터 봥 와시녜. 저거를 가리면 안 돼여. 맨날 맨날 보고 또 봐도 좋은 게 저 산이라”

남성동에서 만난 삼촌은 팔순이 훨씬 넘어보였다. 외돌개로 올라가는 남성리 삼거리에 앉아서 길을 묻는 관광객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공익근무를 하느라 하루에 몇 시간씩 의자에 앉아 있지만 지루한 줄을 모르는 건 한라산 덕분이라고 했다.

“저 한라산이 참 멋진 산이라. 내가 서울에 명산들도 많이 가보고, 일본에 잇인 후지산도 강 봣주만 다 한라산만 못해”

구십을 바라보는 서귀포 원도심 토박이 삼촌은 한라산이 최고의 멋진 산이라며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그런데 요즘 서귀포 원도심에서는 점점 한라산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박혀있는 산이 어디로 가겠는가만은 높은 건물들이 자꾸 생겨나면서 한라산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땅의 효율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높게 짓지 않으면 땅을 많이 차지하게 되는 문제도 있거든요”

한라산을 사랑하긴 하지만 도시가 개발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높게 짓게 되면 너도나도 앞다투어 높게 짓기 때문에 결국 도시 전체가 빌딩숲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때 과연 서귀포는 어떤 곳이 될까?

뉴욕의 맨하탄에는 세계적인 관광지 센트럴 파크가 있다. 말하자면 중앙공원인데, 이 공원은 말 그대로 맨하탄의 정중앙 계란 노른자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면적은 맨하탄 전체 면적의 1/17, 보통 넓은 게 아니다.

센트럴 파크 공원이 만들어진 것은 맨하탄에 고층 건물들이 막 올라가던 무렵이었다. 뉴욕시장에게 주민들이 청원을 한다.

“빌딩 숲 속에서 우리는 숨도 쉴 수 없다. 시민들이 무상으로 편히 쉴 수 있는 녹지공원을 만들어달라”

시장은 당대 공원설계의 대가였던 옴스테드라는 사람에게 공원설계를 부탁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다른 민원이 들어온다. 토지주와 개발업자들, 옴스테드가 선정한 부지가 너무 넓으니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 평의 땅은 엄청난 재산 가치였다.

시장은 옴스테드에게 이 민원을 전하며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옴스테드가 하는 말을 들은 시장은 결국 옴스테드의 원안대로 공원조성을 부탁해 오늘날의 센트럴 파크가 된 것이다.

시장의 마음을 움직인 옴스테드의 말은 이러했다.

“시장님, 인간은 동물입니다. 푸른 하늘을 보아야 하고, 맑은 물을 보아야하고 흙을 밟을 수 있어야 하고, 잔디밭위에 뒹굴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어야하고, 새소리를 듣고,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순화되고 건강해집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100년 후에 이 사회가 치를 사회적 비용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센트럴 파크 공원에 가면 푸른 잔디로 된 축구장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뛰며 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은 호수 곁에는 레스토랑이 있고, 그 호수에서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추억을 쌓는다. 아주 큰 호수 주변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이 겨울에도 끊이지 않는다. 너른 잔디밭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 소풍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분수대가 있는 정원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그러니 전 세계에서 이 지상낙원을 체험하러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1년에 방문 관광객이 5천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관광수입도 보통 짭짤한 게 아니다.

만약 그때 공원부지를 줄이고 높은 빌딩을 지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몇몇 사람이 부자가 되었겠지만 지역주민들은 답답한 도시생활을 했을 것이고 관광객도 모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지역주민들이 행복하고,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센트럴 파크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서귀포 원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 읍면으로 나가면 한라산 전체가 다 보이는 곳이 아직도 많으니 그런 곳에 가서 한라산을 보면 된다’는 사람도 있고 ‘개인의 사유재산권도 존중해야 하니 높이 제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서귀포 전체가 잘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귀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한라산과 섬 삼형제(섶섬, 문섬, 범섬)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것이 바로 랜드마크,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인 것이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지역들이 문화적으로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이미 천연의 완벽한 랜드마크가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한라산이야 제주도 전체에서 다 보인다마는 그래도 서귀포에서 보는 한라산이 제일 멋진거 닮아”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삼촌들의 말은 팔이 안으로 굽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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