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

 

“저희집이 저 아래 서귀진성 근처였어요.”

이중섭 거리를 함께 걷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손가락으로 바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귀진성? 서귀포에 성이 있다구? 금시초문이었다.

“어머, 그래요. 근데 왜 나는 몰랐지?”

일행 중의 하나가 나보다 먼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육지에서 왔으니 몰랐겠죠”

또 다른 사람이 위로조로 말했다.

“나, 이주 8년차란 말예요. 다른 데는 몰라도 이 인근은 너무 많이 다녀서 원주민보다도 빠꼼한데...”

“이 동네 원주민 중에도 서귀진성 아는 사람 별로 없을 걸요.”

이건 또 무슨 소리? 성이라며? 성이면 성곽도 있을 것이고, 성안에 이런 저런 문화유산들이 있을 것인데 원주민도 모른다니.

내친 김에 걸어 내려가보기로 했다.

“아, 이 잔디공원, 여긴 내가 알지”

8년차의 말마따나 여긴 나도 아는 곳이었다. 그것도 익히. 딸아이가 음악레슨을 다니는 곳이 인근이라 매주 한 번씩은 꼭 이 앞을 지나고 더구나 요즘 서귀포에서 이만큼 툭 트인 공간이 드물어 좋아하기까지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디로 봐서 성이라는 거야? 잔디밭을 둘러싼 돌담정도야 이 동네에서는 여염집 흔히 하는 것인데. 이건 누가 봐도 잔디공원이었다. 잔디밭 가운데 네모난 돌우물 같은 것이랑 설명판이 있지만 작가의 산책길에 놓인 설치작품이려니 지나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서귀진성이 문화재로 지정된 게 2000년입니다. 그전에는 동네사람들이 집짓고 살았으니 그분들도 여기가 진성인줄 알 리 없었겠죠.”

서귀포에 사는 윤봉택 선생, 이 분을 알고 있는 건 참 다행이다. 별장이 없으면 별장 있는 친구를 가지라는 농담어린 진담이 있지 않은가.

3성 9진 중의 하나, 제주 최남단의 핵심 방어체계였던 서귀진성이 이렇게 오래 묻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된 지 17년이 지났건만 서복기념관은 알아도 진성은 모른다는 건 정말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제주를, 우리나라를 지켰던 최남단의 중요한 존재인데 말이다.

“진성에는 집수정이 있어요. 우물이 있는 성은 더러 있지만 밖에서 물을 끌어다 댄 곳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성을 지키자면 물이 필수잖아요. 여길 들여다보세요. 수로가 보이시죠?”

이런, 이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잔디공원으로 여기며 걸을 때마다 재미로 만든 땅바닥의 유리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속에 조상의 지혜가 숨쉬고 있었다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직 복원이 완벽하게 되지 않아서 그런 점도 있어요. 여기 수로를 살려서 물을 흐르게 하고 원래 있던 동문과 서문을 만들어서 수문장 교대식 같은 걸 하면 서귀진성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겠지요”

어머나, 그러면 관광객도 많이 오겠네. 오, 관광객 유치까지 생각하다니! 내가 이제 서귀포 주민 다됐쪄.

“그리고 수문장 교대식 때 저기 삼매봉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면 딱이거든요. 실제로 옛날에 그랬구요. 한가지 아쉬운 건 예전에는 진성에서 남극노인성이 보였는데...”

어느새 진성을 둘러싼 높은 건물들, 바다도, 섶섬도, 문섬도, 노인성도 다 가려버렸구나. 그래도 삼매봉은 보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저기 신성호텔 보이시죠?. 그 호텔 사장님이 층고를 낮춰 지어주신 덕에 지금 삼매봉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분이죠.”

때는 바야흐로, 윤봉택 선생이 문화재담당 공무원이던 시절, 건축허가 신청이 들어왔는데 그대로 지었다가는 삼매봉 시야가 꽉 막힐 판, 건축허가가 안 나는 것을 따지고자 건축주인 사장이 찾아왔다. 법적 하자가 없는데 ‘도대체 서귀진성이 뭣이관대’ 멀쩡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단 말인가, 화가 날 수밖에.

“서귀포진성이 없었다면 서귀포가 없었다는 이야기로 해서, 서귀진성의 의미와 가치, 삼매봉과의 관계를 염불하듯 죽 말씀드렸어요. 한 30분쯤 이야기 했을까요. 그의 입에서 ‘몇층 낮추면 되겠습니까?’ 하는 거예요. 너무 고맙더라구요, 육지사람이었는데”

우와, 멋진 개념남일세. 문화재가 살면 호텔로서도 멋진 전망과 주변을 갖게 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2개층이면 코앞의 영업손실이 만만치 않은데, 진성의 가치를 30분만에 수용하다니. 진성에서 삼매봉을 볼 때마다 신성호텔에 감사하리라.

“역사를 알려주기만 하면 과정은 힘들어도 결국은 다 협조해요. 서귀포 사람들은 지금껏 그랬어요. 그래서 자꾸 역사를 발굴하고 역사를 알려주어야 해요. 그 역사가 바로 서귀포의 정체성이고 서귀포에 사는 나의 정체성이거든요”

여기서 퀴즈?

서귀포에 사는 나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서귀진성을 알고, 알리고, 완벽하게 복원하기를 요청하는 일,

맞수다, 정답이우다!!!!

 

오한숙희 / 여성학자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