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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사상 고취, 국권회복 목표로 거사<기획>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2 / 한금순(문학박사)
서귀포신문 | 승인 2017.07.28 09:29

기미년(1919) 3·1운동보다 약 5개월 먼저 제주 서귀포 법정사에서는 스님과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항일운동이 있었다. 이름하여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내년 2018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서귀포신문은 제주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정명(正名)과 함께 그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개요
2.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목적
3.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 마을과 주민
4.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왜곡

 
2.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의 목적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이나 원래의 독립국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법정사 항일운동 주도자들은 거사를 준비하고 조직해나가면서 국권회복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선언하였고 지역주민들 역시 거사가 항일운동임을 인지하고 참여하였음을 기록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정구용 판결문>, <강창규 가출옥 관계 서류>, <폭도사 편집자료 고등경찰요사> 등의 법정사 항일운동 관련 자료에 국권회복을 위한 거사였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모두 일제 당국에 의해 만들어진 문서들로 일제가 독립운동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격문을 작성하였던 정구용의 재판 관련 문서인 <정구용 판결문>에는 법정사 항일운동을 주도한 이들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전라남도 제주도 도순리 한라산 서남록 법정사의 주지 김연일은 전부터 제국정부(=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해 불평을 품어, 1918년 음 6, 7월경 이래 여러 명의 동지와 의논하여 불교도 및 농민을 모아 도당을 만들고, 도내에 거주하는 일본인 관리를 도외로 쫓아냄으로써 제국정부의 통치에 반대하는 기세를 보여주고자 법정사에 모여든 많은 신도들에게 그 뜻을 전하여 가담시켰다.”

“피고 정구용은 이 거사에서 우 김연일 등의 모의에 참여하면서 ‘우리 조선은 일본에 탈취당해 괴롭다. 대거 제주향을 습격하여 관리를 체포하고 일반 일본인을 내쫓아라.’라고 격문을 작성하였다.”

“나는 1918년 음력 4월부터 음력 9월까지는 법정사에 체재하고 있었는데, 그 때 나와 같이 살던 자는 장임호 외 6명 등으로, 김연일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우리들에게 제주도에 있는 일본인 관리 및 일본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었다.”

“제국정부(=일본)의 통치에 반대하는 기세를 보여주고자”, “조선을 잘 통치해서 원래의 독립국으로 만드는데 진력하기로 했음으로”, “지금부터 조선정치를 바꾸려고 하는데, 우선 그 수단으로 일본인 관리를 이 섬에서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내에서 일본인을 쫓아내 원래의 한국시대로 회복할 것이니 조력하시오”라는 등의 뜻을 사전에 인식시키며 주도자들은 지역주민들을 동참시켰다고 한다.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 재연장면.

이에 따르면 법정사 항일운동을 일으키는 목적이 제주도에서 일본인을 몰아내는 일이며 이것이 곧 독립을 위한 일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어 지역주민들도 우발적으로 가담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는 문구들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거사 현장의 선봉대장이었던 강창규가 수감 후 가출옥되어 나오면서 만들어진 서류인 <강창규 가출옥 관계 서류>에는 강창규가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한일병합의 이치를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이 범죄 이유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일본인을 쫓아내고 선정을 펴기 위해 거사를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일제 고등 경찰의 극비문서인 <폭도사 편집자료 고등경찰요사>에서도 법정사 승려들은 “국권회복을 위하여 계속하여 주민들에게 반일사상을 고취시키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들 문서들은 모두 일제 당국이 기록해 낸 문서들로 일제도 법정사 항일운동의 목적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데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기록들이다.

법정사 항일운동을 조직하였던 법정사의 주지 김연일 이하 주도자들은 당시 국내의 정세에 대한 인식 위에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일본이 통치하고 있음은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으로 원래의 독립국으로 돌아기기 위해서는 조선의 정치를 바꾸어야 하며 그를 위해 우선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인식을 표방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을 일으키는 목적이 국권회복임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거사 당일 항일운동의 대열에 동참한 지역 주민들은 길가에서 만난 일본인을 구타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 당국은 1920년대 들어서서는 법정사 항일운동을 사교도의 민중선동 사건으로 조직적으로 폄하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는 탄압의 빌미로 이용하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고 더 이상의 독립운동을 차단시킬 수 있는 구실로 이용하기 좋은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글/한금순(문학박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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