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7

9순의 우리 이모 이모부의 소원은 서귀포에 와서 사시는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의 반대로 몇 년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신다. 반대 사유는 단 하나, 제주에는 의료시스템이 믿을 만 하지 않다는 것. 계절이 바뀔 때면 안부전화를 하시면서 말미에 꼭 하시는 한마디, “제주에 좋은 병원 생겼냐?”

제주에서 처음 조혈모세포이식에 성공한

제주한라병원 혈액종양내과 한치화 과장

작년 여름, 의사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의사로 오래 일하다가 제주가 좋아 조금 일찍 퇴직을 하고 내려온 분이었다. 퇴근 후에는 바닷가의 노을을 사진기에 담고 휴일이면 아내와 제주 곳곳을 누비며 보내는, 진정 제주를 사랑하고 즐기는 분이었다.

얼마 전 그 분이 제주에서 아주 특별한 기록을 세우셨다.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증받은 골수, 즉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수이식 성공 기록보유자인 그 분께는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겠으나 제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를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하자면 항공료에 체재비로 날라가는 비용만도 천만원은 족히 되기 때문에 도민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희소식이었다. 축하전화를 드리면서 골수이식 말만 들었는데 어떤 거냐고 여쭸더니 껄껄 웃으시며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이 걸린 병을 고쳐준 거예요”라고 하시니 머리에 쏙 들어왔다.

이모 이모부께 전화를 드려 “제주도가 골수이식도 성공시키는 동네라고 아들들에게 알리시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딸애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갑자기 허리를 다쳐 주말에 하는 수업을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목소리에서도 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내가 아는 의사에게 문의 결과 추간판 파열이 의심된다기에 당장 응급실로 가서 엠알아이를 찍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아픈 중에도 차분하게 말했다. “서귀포에는 주말에 그런 걸 하는 병원이 없어요”

장비는 있는데 주말에는 안 쓴다?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골수이식 성공 의사가 계신 병원에 문의했다. 그곳도 주말에는 응급환자라도 정말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엠알아이가 불가능하다는 답이었다. 나는 완전 좌절했다.

서귀포 토박이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서귀포 사람들은 제주시 병원 가고, 제주시 사람들은 서울 병원에 가고, 이게 제주도의 현실마씀. 서귀포에는 제대로 갖춰진 병원이 하나도 없으니 아직도 촌이라, 촌”

그들 눈에, 서귀포가 너무 좋아 이사왔다고 입에 침이 마르는 내가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공연히 화가 나서 울그락불그락 하다가 마침 다음날이 일요일인지라 그 의사 선생님께 만나달라고 요청을 했다.

제주에서 만 3년을 넘긴 그 분은 이미 제주의 현실을 꿰고 계셨다. 핵심은 의료체계에 대한 도민들의 불신이었다. 의료체계가 약하다보니 도민들은 서울로 가게 되고, 맨날 서울만 가겠다고 하니 의료체계는 강화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의사선생님께 처방전을 요구했다. 제주도가 믿을만한 의료체계를 갖출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처방전은 아주 간단했다. ‘사람’

“시스템이 있으되 좋은 의료진이 없는 게 문제예요. 급한 병에 걸렸을 때 일체를 다 카바할 수 있는 수준과 경험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있다면 고급의료가 가능하죠. 은퇴한 쟁쟁한 의사들을 유치하세요. 부부가 살만한 집과 적당한 월급을 제시한다면 제주에 와서 살고픈 사람은 적지 않을 거예요. 자녀를 다 키웠으니 큰 집이나 큰돈이 필요한 때도 아니고 웬만하면 제주의 매력에 끌릴 거라고 봐요”

“선생님 혹시, 서귀포에 와서 개업하시면 안돼요?”

내 말에 그 분은 다시 껄껄 웃으셨다

“그런 큰일을 개인병원으로 운영하기에는 수익을 보장받기가 어려워서 못해요. 의료체계는 도민들의 삶의 질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도가 투자하는 게 맞지요.”

웬지 이 분의 머릿속에는 많은 답이 들어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이 분마저 제주가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골수이식 수술의 성공 소식에 육지의 의사들은 ‘그걸 혼자서 다 했단 말이냐’고 놀라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의미 부여는 둘째치고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는 말속에 쓸쓸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제주도 안 떠나실 거죠?”

떠나시면 안돼요. 저의 서귀포 러브스토리도 지켜주세요. 늙어서 병원이 없어 서울로 다시 가야되면 사랑하는 서귀포와 헤어져야 하잖아요.

또 한번 껄껄 웃는 의사선생님, 그 하회탈 같은 표정은 예스일까? 노일까?

글·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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