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 / 시조시인

 
 

〈애기나팔꽃〉
45도 삐딱하게 그것도 꼭 왼쪽으로
아침부터 하루 반나절 물을 길어 올리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고 두레박질 한창이다.

이 여름, 내 사랑도 45도에서 흔들려
가늘고 긴 섬유질로 촘촘한 그물을 짠다.
끝끝내 걸리지 않고 내 지문만 남은 허공

 이 시(時)는 2009년도에 1년 동안 일본 사가현 가라츠시청에서 파견근무를 했었는데 그때 쓴 작품이다. 출퇴근길에 오며가며 보았던 애기나팔꽃...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팔꽃은 행복한 걸까? 가라츠시청 창문을 따라 하늘높이 달린 분홍색 나팔꽃은 예쁘고 행복하기보다는 애처롭고 슬퍼 보였다. 무더운 한낮이 되면 꽃잎 끝을 따라 번지는 목마름이 내 심장까지 쫒아 와서 결국 애기나팔꽃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데 지금은 내가 아끼는 작품 중 하나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지면서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는 나라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수행자처럼 히말라야를 걷다가 그 나라에 갔는데 그 후 페이스북에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라고 글을 올린 나라. 국민총행복 지표를 국가 정책 기준으로 삼은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는 나라, 맥도날드도 포기한 패스트푸드 없는 나라. 돈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나라. 바로 부탄이다. 

 

부탄 국민들은 부자가 되려 애쓰지 않지만 아무도 굶주리지 않는다. 잘 정돈된 소박한 농촌의 풍경이 이들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암시한다.(사진은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에서 발췌-편집자)

  「2015년 부탄 국민 행복도 조사」결과,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 부탄 국민의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뭐 조사결과 그대로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부탄 국민들 대다수가 자신은 행복하고,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인데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우리의 젊은이와 비교가 되어 참 씁쓸하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늘 쫒기듯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속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떠나고 싶어’ 라는 생각을 자주 하다보니까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몰두해 GDP 성장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던 1970년대부터 부탄은 국왕이 나서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정과제로 도입했다. 국민의 행복도가 증진되고 있는지 국민총행복위원회가 꾸준히 측정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는데 국제비교 통계상의 순위 자체가 행복을 판단할 때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땅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크기가 아닐까...

 

덴마크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 이들의 생활 속에 타인과의 비교나 허세는 찾아볼 수 없다.(사진은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서 발췌, 편집자)

요즘 휘게 라이프가 떠오르고 있다. 편안함과 따뜻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의미하는데 덴마크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자 그들의 오랜 문화이며, 삶이다. 행복한 감정을 모두 휘게라고 하는데 행복의 원천 휘게에는 허세가 없다.

  이벤트에 열광하고 명품에 마음을 빼앗기고 늘 남과 다른 색다름에 목말라하는 대중들에게 휘게는 멀리 있겠지만 담백하고 소박한 제주음식을 사랑하고, 느리게 걸으며 사색하는 올레길과 섬 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의 정기로 차분히 삶을 이어가는 제주인에게는 이미 예전부터 휘게가 존재했다. 소박하고 검소하고 아끼며 살았던 우리들이 어느 날부터 휘게를 잊고 산 것이다. 아무리 촘촘하게 그물을 짜더라도 바닷물을 건질 수는 없는 거고, 듬성듬성 짠 그물에도 고기는 걸린다. 행복은 그런 거다. 진정한 행복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에게 충실하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지만 이웃을 위해 봉사하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따뜻한 온도의 말을 건네며 허세 없이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부탄의 국민처럼 우리 국민들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나라이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