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천주교 제주교구 부교구장 문창우 주교

“본인 문창우 비오는 가톨릭 교회에 충성하고 그 최고 목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며,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을 이어받은 후계자요, 주교좌의 으뜸인 교황에게 항상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6월 28일 천주교 제주교구 부교구장 주교에 임명된 문창우 비오 주교가 지난 7월 4일 교황 대리자인 주한 교황대사 앞에서 행한 신앙선서와 충성서약 내용이다.
  지난 8월 15일 주교서품을 받은 문창우 주교는 “먼저 교회가 봉사하는 자세, 섬기는 자세, 사랑과 기쁨과 은총의 삶을 살아내는 역할들을 통해서 제주 사회에 그리스도의 빛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라는 포부를 먼저 밝힌다.


 

천주교 제주교구 문창우 비오 부교구장 주교

Q. 주교직 임명에 눈물 먼저 흘리셨다던데요. 주교서품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가톨릭신문에 ‘하느님께서 저에게 엄청난 사고를 치신 느낌입니다’라고 달아놓은 인터뷰 기사 타이틀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저를 스스로 느끼는 회한의 눈물이기도 했고,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눈물이기도 합니다.
제가 주교가 된다는 것 자체가 관례상 맞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6월 20일, 교황대사관 연락을 받고 상경해서 대사관에서 주교 임명 소식을 들었습니다. 28일 공식 발표 때까지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저는 아닙니다, 그냥 죽여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반복했죠.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는지 “죽여주십시오”를 “주교 주십시오”라고 들으셨나 봅니다. 끝내 죽여주시지 않은 채 7월 4일에 충성서약을 했습니다.
주교직을 받아들이면서 무엇보다도 용서를 청하고 싶었습니다. 선배 신부님들과 동료, 후배 사제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라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사목에 임하면서 직접적으로 다툰 일은 없지만 제 개인의 가치관과 기준 안에서 구별하고 판단했던 적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에 대해 용서를 청했습니다.
부교구장 주교직은 개인적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 믿고 순명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졌고요. 개인적 영광이라기보다는 우리 제주교구를 지켜온 수많은 분들의 은총과 기도가 모아졌다고 생각하면서 기도 중에 교우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문창우 주교의 문장

Q. 주교로서 비전이라든지 앞으로 펼치려는 계획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문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주교님의 문장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교를 상징하는 모자를 맨 아래에 놓여 있게 했는데요. 이는 제가 추구하려는 섬김의 리더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전체를 두르고 있는 띠는 교회가 인류를 끌어안는 모습이죠. 거기에 푸른 배경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인데요. 기쁨과 은총의 리더십을 뜻합니다. 상단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교 정신, 십자가 안의 흰 점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못 박힌 상흔을 상징하고요. 가운데 방패 안에 있는 한라산과 파도는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우뚝 서 있는 제주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을 비추는 태양은 하느님의 사랑을 뜻하며 이는 사랑의 리더십을 말합니다.
거친 바다 위에 떠 있는 열두 개의 별은 하느님의 은총과 바다의 별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에 힘입어 새 하늘 새 땅을 이루고자 하는 천주교 제주교구 신자들의 바람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전임 교구장이신 김창렬 주교님의 믿음과 은총에 바탕을 둔 신심 교회의 정신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세상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교회를 지향하시는 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의 시각과 실천 노력을 본받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았습니다. 그래서 제 미션을 ‘제주를 위한 교회, 제주를 향한 교회’, 제주 복음화에 두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지난 8월 15일, 한림읍 금악리 소재 성 이시돌 삼위일체대성당에서 거행된 주교 서품식에서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는 동안 가장 낮은 자세로 부복해 있는 문창우 주교.
강우일 주교 주례, 주교단 공동 집전으로 거행된 주교 서품식에서 문창우 새 주교에게 안수하는 강우일 주교
문창우 새 주교에 대한 복음서(성경) 수여
주교의 상징인 주교관과 반지, 지팡이 수여

Q. ‘제주를 위한 교회, 제주를 향한 교회’를 어떻게 실천하시겠다는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신축교안(이재수의 난) 주제의 연구 논문 결론에도 썼었습니다만 교회와 지역주민의 충돌을 반성하면서 과연 교회가 제주를 위해서 죽었는가(?) 생각해봤어요. 교회의 토착화랄까, 성당 안에서 메시지나 발표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안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첫째 핵심 가치는 제가 그동안 포클라레 운동을 하면서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만, ‘마리아적인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보여주신 마리아적 사제직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마리아의 소통과 공감, 배려와 협력 등을 통해 이 세상,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키워드와 일치하는 성령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둘째는 세상의 세속화 세태 속에서 가족의 해체 현상이 심각한데요. 이러한 세태 속에서 흔들리는 가정을 성화하는 일에 온 힘을 쏟는 것이고요. 세 번째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그들과 함께하는, 연대하는 교회에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 사목 표어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제주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아픔과 갈등, 시련까지도 품어서 하느님 백성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사제 수품 때 서품 성구와 똑 같습니다.

 

주교 서품을 받고 인사하는 문창우 주교
주교서품식 후 인사말씀을 하는 문창우 주교

Q. 지난 1996년 2월 10일 사제서품을 받고 22년차 사제직에 임하면서 주교품에 오르셨습니다. 그동안 사목활동에서 느끼는 소회는 어떠하신지요.

저의 집안이 가톨릭 집안이 아니었는데 제가 사제직에 부름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는데요. 제 동생도 2년 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는 것이 제게 일어난 사건 중에 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제서품 받고서 서문성당 보좌신부로, 그리고 중문본당 주임으로서 좋은 신자들과 사목의 첫 경험을 하면서 보람뿐만 아니라 신자들과 하나 될 수 있었던 일들이 기억 중에 새롭습니다. 교구청 교육국장으로 임할 때에는 청소년 사목이라는 토대를 나름대로 좀 더 구체화시키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셨던 교리교사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다가감이라는 면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또 10년 동안 신학교에서 제가 먼저 배우면서 가르치는 시간 안에서 말과 행동이 일관됨을 추구하면서 만났던 하느님께 응답하는 신학생들의 순박한 마음들이 생각납니다. 다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포클라레(Focolare, 마리아 사업회) 운동과의 만남인데요. 특히 하느님의 뜻에 투신함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죠.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이 교회의 큰 역사 안에 분명히 현존하는 현실임을 느낍니다. 제 개인 안에 왔을 때 강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지금 돌아보면, 제가 소임했던 사목뿐만 아니라 제가 고등학생 때 뒤늦게 세례를 받고 1년 6개월 동안 이태리에 포클라레 영성 수련을 다녀온 일이라든지 대학 가톨릭학생회 활동 중에 6월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 중앙성당에서 6박7일간 단식 농성하면서 느꼈던 점들도 그렇죠.
그 모든 일들이 주교로서 부름을 받았을 때 하느님의 섭리를 더 강하게 보여주신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과정마다 딜레마를 느끼기도 했으나 이번 주교직 부름에 응답하면서 하느님께서 ‘항상 너와 함께 있었다’는 확신에 찬 음성을 주신 것 같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이 시대가 원하는 목자의 모습을 살아가라’고, ‘부르심에 응답하라’고 초대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짊어져야할 주교직의 책무가 어마어마하리라고 느낀다”는 문창우 비오 주교. “제주교구 출신 사제가 주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정말 경사스러운 일”이라 환영하면서 “문 주교가 제주교구와 지역사회 그리고 한국사회의 관계를 잘 이끌고,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합을 가져오는 사목을 해 주길 바란다” 말씀하는 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잘 보필해 주교직에 임하겠다고 다짐한다.           

지난 6월 28일, 피정 중에 주교 임명 소식을 받은 문창우 주교가 강우일 교구장 주교를 비롯해 교구 사제단의 축하를 받으면서 기념촬영에 임했다.

※ 문창우 주교는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 회장으로서 6월 항쟁 중에 시위대와 함께 중앙성당까지 쫓겨가 6박7일 동안 단식 농성을 하면서 함께하는 사제들을 보며 성소를 느끼게 되었고, 이후 이탈리아에서 1년 6개월 동안 포콜라레 영성 유학에 임하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제주대학교 졸업 후에 광주가톨릭대에 입학하게 된 결정적 계기.
1996년 2월 10일 사제서품 이후 서문성당과 중앙성당 보좌를 거쳐 중문성당 주임을 역임한 문창우 주교는 천주교 제주교구 교육국장으로 청소년 사목에도 임했다. 이어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서 영성지도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했다. 2016년 3월부터 신성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부교구장 주교(Coadjutor Bishop)는 교구장 승계권을 갖고 있어, 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면 그 즉시 교구장이 된다.(교회법 제409조 1항 참조) 

                                                                                     대담 : 안창흡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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