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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꾸러미, 나의 꾸러미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11
서귀포신문 | 승인 2017.08.21 10:10
주간꾸러미

 언제부터 엄마의 꾸러미를 받아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살림을 하고 집에 냉장고가 있을 때부터일 것이다. 엄마가 먹을거리를 보내오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고향집 마당에서 농산물이 수확되었을 때 혹은 김치를 담았을 때이다.

 엄마는 40년 동안 고향 창원에서 단감을 재배해 오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둘이서 한창때는 수 천 평의 과수원을 임대해 농사를 지었고, 그 노력으로 나는 멀리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단감을 수확하는 11월이 되면 10㎏ 상자 한가득 단감이 부쳐져 왔다. 어른 주먹만한 단감을 보내주셨는데 ‘단감 과수원집’ 아들에게 단감은 참 맛이 없는 과일이었다.

 단감시즌이 끝이 나면 곧 김치시즌이 돌아오는데 이때 집에서 기른 농산물과 가공품이 가득 담겨왔다. 장정이 들기에도 무거운 15㎏ 상자에 가득 농산물을 담아올 때면 오늘은 엄마가 무엇을 보냈을까 궁금해진다. 상자를 열어보면 직접 담은 김치와 정구지 무침(부추무침)등 반찬 종류와 간장, 된장 등 장류, 멸치와 오징어포 등 마른 해산물, 상추와 풋고추 등 농산물이 담겨 있다. 

 고향에서 보내온 이 꾸러미 상자를 받을 때면 늘 마음이 복잡해졌다. 집에서 고생하며 보내온 엄마 생각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양이 너무 많고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품목이 들어 있었다. ‘이 반찬을 도대체 언제 다 먹지?’, ‘자식이 멸치 싫어하는 걸 엄마가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라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 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들, 잘 받았나?”, “어, 엄마 잘 받았다. 안 보내줘도 되는데.. 뭐 이런 거 까지 보냈노. 고맙다. 잘 먹을께” 늘 끝은 훈훈하게 마무리 되고는 했다.

 사실 고향 생각날 때면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다. 봄이 되면 외할머니집 대문가 앵두나무에 열리던 앵두, 여름이면 새콤해서 입안에 침이 흥건하던 자두와 달콤한 복숭아,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을 서리했던 청포도까지... 오늘날 모든 품목이 택배 배송되고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사서 먹을 수 있겠지만 산지에서 바로 따서 먹었던 그 맛을 아직 잊지 못한다. 

 엄마가 보내온 그 꾸러미를 나는 마을사업으로 몇 년째 해오고 있다. 1년 사시사철, 겨울의 식탁이 더 풍성한 제주이다 보니 농산물의 종류도 다양하고 육지에서 한 번도 보거나 먹어보지 못한 농산물도 많다. 천혜향, 한라봉, 황금향, 레드향 등 다양한 감귤 품종과 브로컬리, 콜라비, 비트, 쌈배추 등 친환경 월동채소, 돌미역, 가시리, 톳 등 해조류, 고사리, 표고, 더덕 등 임산물까지 바다에서 한라산까지 나오지 않는 품목이 없다.

 내가 원하는 품목을 필요한 양만큼 돈을 주고 사는 방식이 아니라 엄마가 멀리 도시에 있는 자식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텃밭에 있는 농산물을 알아서 챙겨주는 방식이 바로 꾸러미다. 물건의 교환관계 이전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인데 우린 바다가 갈라놓은 거리를 엄마와 자식 간보다 더한 믿음으로 지난 9년간의 관계를 이어왔다.

지난 시간동안 우리와 모자의 정을 쌓았던 사람만도 수천 명에 이르고 이들 중 수 백 명은 직접 가상의 고향인 무릉리까지 방문했다.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나고 집밥을 먹을 일이 점점 더 적어지는 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엄마와 고향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해 부터는 인근 영어교육도시의 외국인 선생님 가족들에게 제철 농산물을 직접 배달하고 있다. 멀리 타국에 일을 하러 온 선생님에게 “어릴 적 먹던 그 토마토 맛”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고 처음 이 사업을 요청한 외국인 교사, 마일스 부부의 집에 초대되어 영국 가정식 만찬을 맛보기도 했다.

이름도 없는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 이 일을 한다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작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일이기에 지난 9년의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마치 엄마가 그 긴 세월을 땀과 노력으로 버티고 또 고향을 지켜왔듯이.
                                                                               홍창욱 / 무릉외갓집 실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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