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택 / 제주대 철학과 교수

  요즘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주의보로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해마다 칠말팔초가 되면 폭염 속에 생명평화를 갈구하며 대열을 이뤄 제주섬을 일주하는 이들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5박6일간 생명평화대행진이 있었다.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은 강정이 해군기지로 선정된 이듬해인 2008년 8월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정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엿새 동안 제주섬을 일주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에 마을주민들은 국책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주민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된 것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알리기 위해 폭염 속에서 매일 30킬로미터를 걸었다. 소나기로 젖은 신발을 신고 불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걷느라고 발들은 피범벅이 됐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과정에 있다. 그러기에 당시 노무현 정부도 해군기지는 주민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했고, 해군기지부지로 논의되던 화순과 남원은 주민반대로 선정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쫓기던 해군이 당시 도지사와 결탁해 강정마을을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지부지로 선정했고, 건설과정에서도 군사작전하듯 무리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했다. 그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저항은 대단했다. 2009년 강정마을 주민과 제주도내 시민단체가 합세해 전국 최초로 도지사 주민소환을 추진하면서 제주해군기지문제는 한 마을의 찬반갈등을 넘어 제주도민 전체의 관심사로 확대되었다.

  제주해군기지문제는 2011년 초에 전국의 평화활동가들이 합류하면서 제주도내 찬반 갈등을 넘어 전국적 문제로 확장되었고, 2012년 9월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제주에서 열리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강정마을은 이제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국민과 세계인이 주목하는 곳으로 되었다. 2012년부터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은 전국의 평화, 종교, 환경, 문화 단체들이 참여해 동진과 서진으로 나누어 5박6일간 대행진을 하면서 생명평화운동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은 일년에 한번씩 강정마을을 중심에 놓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운동가들이 참여하는 문화 행사가 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처음부터 생명평화 이념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고 마을공동체가 깨지는 것에 저항했고, 그들의 저항을 불법으로 매도하면서, 구금하고 벌금을 부과할 뿐만 아니라 구상권을 청구했다. 이에 강정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제주해군기지 부지선정 및 건설과정의 진상을 규명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범법행위로 매도한 것에 대해서 명예회복을 하며, 국가폭력에 의해 강정마을의 자연환경과 공동체가 훼손된 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의 근본적 문제는 생명이요 평화이다. 4.3 당시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남북분단 과정에서 무고한 3만의 죽음을 목도한 도민들은 제주섬이 죽임과 전쟁이 없는 진정한 세계생명평화의 섬으로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려면 제주도가 주변국과 갈등을 야기하는 군사기지의 섬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촉진하는 비무장평화의 섬이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 추세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성산읍에 계획되는 제2공항에 공군기지의 악몽이 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마다 폭염 속에 진행되는 생명평화대행진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고발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천박한 자본과 군사주의에 묻힌 인권과 생명평화의 숭고한 가치를 되돌아보도록 한다.

  이번 2017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는 자본과 국가의 폭압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강정마을 주민과 성산읍민 등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해고노동자, 여러 참사로 인한 유가족, 밀어붙이기식 국책사업으로 고통받는 주민, 그리고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미국 등에서 온 해외평화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한 목소리로 “민주야, 생명아, 평화야 고치 글라”를 외쳤다. 내년 이맘쯤에는 그 꿈들이 모두 이뤄져서 제주생명평화축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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