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8

정창영 초대전 포스터.

1983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남자들은 막 시작된 프로야구 열풍에 휩싸여 틈만 나면 온통 야구 이야기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한 동갑내기 나의 남친은 학생 때 시위전력 때문에 내무반 고참들의 갈굼질로 군생활이 고달프다고 하소연이 끊이질 않았지만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땡전, 9시 땡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오늘...“로 시작하는 뉴스를 들으며 불평불만자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유비통신에 쫄면서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허락받은 스포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무렵, 군에서 막 제대한 또 한 명이 있었다. 예술을 사랑한 그는 이런 세상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살다가 결심했다. 어차피 여기서 살아도 라면에 소주밖에 먹을 수 없는데, 외국생활인들 어떠랴. 맨손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독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단국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동서독의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그 결과 7년 후인 1990년 독일은 통독으로 하나가 되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소통이 결국 통일로 이어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는 깨달았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살아 있어야 하는 거구나, 예술의 몫이 이런 거구나”

정창영, 독일로 떠나간 한국의 예술가 정창영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 예술에 대해 새롭게 눈 뜨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념과 조직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 그 폭력이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그 결과 한 시대가 굴절되고, 그 굴절이 다음 시대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폭력이 되는, 이 시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캔바스에 가득차게 딱 한 사람씩만 그렸다. 그는 ‘윤상원’을 그렸다.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죽음을 맞은 윤상원 열사. 항쟁을 지휘했던 그의 나이 30세. 그림속에서도 잘생겨 보이는 얼굴, 그러나 눈에는 우수가 가득하다. 그 윤상원의 얼굴 위로 다른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덕구. 제주 4·3 무장대 총사령관. 효수된 그의 머리가 관덕정 광장의 전봇대에 전시되었을 때 그의 나의 29세.

정창영초대전 현장 스케치.

‘속숨허라이’(‘조용히 하라’,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의 제줏말)

4.3이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머리 숙여 사과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제주에서는 여전히 4.3을 입에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삼촌들이 적지 않다. 삼촌네들은 그 자식들에게도 절대 나라에서 하는 일에 반대하거나 그걸 내색해서는 안 된다고 조심시켰다.

그리하여 제주에는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 이른바 시민운동의 세력이 성장할 기반을 갖지 못했고 도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다보니 공익보다는 사익이나 집단이익을 우선하는 자들이 득세하기 쉬웠다. 국가의 폭력으로 굴절된 삶이 이렇게 세대를 이어 세습되었던 땅, 제주.

정영창은 노란 리본을 그렸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진 그 리본은 요즘 흔히 하는 손가락 러브 사인과 닮아 있다. 그 러브사인은 리본을 매달고 있는 둥근 팔찌를 하늘 높이 들어올릴 날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영창은 이 그림들을 가지고 제주로 날아왔다.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 제창되고, 훼손당하던 4.3에 대한 평가가 다시금 제자리찾기를 시작하고, 세월호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운명을 함께한 기간제 교사들이 순직으로 인정받게 된 무렵이었다.

예술공간 이아(옛 제주대병원)가 <한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는 정영창의 작품들, 커다란 캔버스에 가득 찬 한 사람, 한 사람을 계속 보다보니 저절로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한 사람이 집단보다 덜 중요할 이유가 없다는 것.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속숨허라이’인가. 한 사람의 고통은 모두의 고통이다. 그 한사람의 고통을 언젠가 다른 사람이 또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사람의 침묵은 모두에게 어둠을 드리운다. 그러므로 이제는 말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어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 광복절,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광복절을 체험해 보자.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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