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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딸 아들은 어디로 갔을까?(1)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10
서귀포신문 | 승인 2017.08.24 09:23
서귀포시가지 전경.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제주시로 보냈어야 했는데, 괜히 서귀포에 붙잡아놓고 있다가....”

자녀교육상담을 받겠다고 나를 찾아온 40대 중반의 여성은 급기야 울먹였다. 자식 문제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게 없음을 또 이렇게 확인하게 되는 게 나로서도 마음 아팠다.

그 집 아들, 올해 고등학교 2학년, 올 초만 해도 별 말이 없더니 여름방학을 하면서 갑자기 진로를 수정, 미술을 하겠다고 부모에게 ‘통보’한 것이다.

아들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어릴 때니까 그걸 제 진로와 연결시키지 못한 거죠. 솔직히 진로 문제가 중학생 때까지는 절실하지 않잖아요. 고1 되면서 미술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실 것 같고, 내가 공부하기 힘들어서 이러나 자신도 없고 해서 망설이며 시간을 까먹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이 집 아들은 올 여름방학 때부터 입시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귀포에는 ‘그런 교육시설’이 없어서 산 넘어 제주시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올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학원을 갔다가 한밤중에 지쳐서 귀가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라니. 게다가 아들이 이런 말까지 한다면.

“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요. 길에다 뿌리는 왕복 3시간도 너무 아까워.”

보다 못해 아들의 운전기사로 나섰다. 부족한 잠도 차에서 보충하게 하고 음식도 챙겨 먹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런데 방학이 끝나면서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 유리창이 달궈지게 더운 날씨에 운전도 힘들었고 자신의 생활리듬이 확 바뀌니, 안 그래도 갱년기인 심신이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다. 아들을 서귀포 학교에 보낸 것에 대한 후회와 서귀포에 살기를 고집한 것에 대한 자책을 넘어 돌아가신 부모님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무사 우리 어멍아방은 날 여기 태어나게 해신고’

서귀포에 이주한 이래 서귀포 토박이를 늘상 부러워했는데, 정작 토박이가 서귀포를 상처로 받아들이는 현실 앞에 상담은커녕 할 말이 없었다. 차 한 잔과 등 토닥임 정도로 그를 위로하고 돌아서니 무력감이 몰려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서귀포에서 미술을 할 길은 없을까?”

“왜 없어? 서귀포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중섭 미술관에는 입주 작가들도 있잖아.”

“그렇지! 그러면 서귀포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을 모아서 시립미술학원을 만드는 건 어때? 서귀포하면 예술가들이 엄지척이잖아.”

“오호, 그거 좋은 생각! 시립이면 사교육비 부담도 없고, 조기 재능 발견도 가능하고, 예술가들도 먹고 살 길이 생기는 거고!”

“그렇지. 예술로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전국의 예술가들이 경쟁적으로 서귀포로 오겠는데, 서귀포가 정말 예술섬이 될 수 있겠는 걸, 하하하”

야밤에 1인 2역 홀로 드라마를 펼치다 보니 점점 흥분이 되면서 무력감이 사라진 자리에 상상의 날개가 돋아났다.

“내친 김에 이중섭미술대학을 만드는 건 어떨까?”

“우와, 멋진데. 서귀포에 대학 하나는 또 있어줘야지”

“게메마씀, 제주에 거주하는 유명 작가들을 교수로 모시고 대학 입학정원의 일정한 비율을 서귀포 지역민으로 하는 거야. 서귀포 프레미엄!”

“당연히 그래야지, 홈그라운드의 잇점! 그렇다면 육지에서 일부러 이주해 오는 사람들 꽤 있겠는데”

“그런 경우에는 여기서 초중고를 나왔는지, 여기서 태어났는지, 부모가 서귀포 사람인지, 몇 대부터 살았는지... 하하하”

상상만으로도 통쾌하여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 평소 친분 있는 미술관 큐레이터를 만나 간밤에 내가 펼친 일인극과 상상을 농담삼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발 그 일 좀 추진해 보세요. 서귀포는 정말 자원과 가능성이 많은 데잖아요. 너무 아까워요”

이게 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술섬 서귀포에서 다양한 예술적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또다시 흥분했다.

그래! 이제 서귀포가 더 이상 청소년들을 뺏길 수 없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서귀포가 몸과 마음에 밴 이들이야말로 서귀포의 진정한 자산 아닌가. 비단 예술을 하려는 청소년만이 아니다. 더는 제주시로, 육지로 다 뺏겨서 ‘여기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선 안 된다. 청소년들이 서귀포를 단순한 고향 이상으로 더 깊이 사랑하고 서귀포를 떠나지 않고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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