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아 / 전교조 제주지부 대의원

  욕실에 문제가 생겼다. 욕조 배수관이 막히면서 바닥에 고인 물이 타일 안쪽 벽면을 따라 조금씩 흘러 내렸던 모양이다. 흘러내린 물은 결국 아랫집 벽지에 스며들었고 가뜩이나 폭염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이웃에게 곰팡이라는 혹까지 붙여주고 말았다. 공사는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맡겼다. 성수기라 작업자를 구하는데 따른 약간의 어려움과 이런저런 사정까지 더해지며 일주일이라던 공사 기간은 2주일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공사 첫 날인 금요일, 철거 작업자들이 욕조, 변기, 세면대를 포함한 각종 부속품들을 떼어내고 타일을 깨고 바닥을 부쉈다. 공사 개시 후 4일차인 다음 주 월요일에는 타일을 바꾸느라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타일 작업자들은 이미 개어 놓은 시멘트만 바닥을 높일 부분에 부어 놓고 철수했다. 타일을 다시 정하면서 일정이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공사 개시 6일차인 수요일에 결국 타일을 붙였지만 굳는 시간이 필요한데다 마무리를 언제 할 것인지 정하지 않은 채로 작업자와 연락까지 닿지 않아 주말을 넘기고 말았다. 공사 개시 12일차인 그 다음 주 화요일에 타일 줄눈 작업을 마쳤다. 천정과 도기만 설치하면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 되겠구나, 생각하며 지인에게 가능한 빨리 시공을 마쳐달라고 독촉했다.

공사 개시 14일차인 목요일 오전에 천정을 시공했고 오후에는 도기를 배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거울 겸 슬라이드 수납장이 욕실 전등을 가려서 설치하면 안 된단다. 지인이 견적을 내면서 내가 주문한 거울과 수납장을 누락시켰다고 하여 전날 급하게 업체에 가서 재고 중에 고른 수납장은 이런 이유로 다시 반품되었다.

  공사 일정은 계속 지연되고 초과 금액까지 발생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전날의 기억은 반품도 못하는데. 이날 설치 못한 물품들은 별도의 시공비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작업 개시 19일차인 8월 15일 화요일 기준, 욕실은 거울과 수납장이 없는 미완성의 공간이다.

  작업 총괄 책임자는 관련 분야 전문가이기에 의뢰인과 일정을 조율해 분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욕실 치수에 맞는 자재와 집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반적인 현장 작업을 지휘해 주어야 한다. 그 또는 그녀가 만약 여러 작업장을 관리하며 돌아다녀야 하기에 현장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자신이 전문가임을 믿고 맡긴 의뢰인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공사 중간 책임자를 통하지 않고 작업자와 직접 연락하며 실시했더라면 오히려 원활하게 공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의뢰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책임자의 안일한 의식과 공사 진행 과정에 대한 나의 이해 부족으로 공사는 더욱 어렵고 더디게 진행되었다. 

  무더위 속에서 작업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이웃들에게 끼칠 먼지와 소음 피해를 생각하며 눈치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공사가 있는 날마다 엘리베이터와 복도, 계단 등 공용 구간을 청소했다. 따라서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짜증이 치솟아 올라서 매우, 엄청, 대단히, 답답하고 지난한 과정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돈만 내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깔끔하게 뚝딱 해결되는 세상이라 알지 못했을 장면들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가정용 욕실이라는 좁은 공간이기에 작업자들은 대부분 2인 1조로 움직였다. 시설물을 떼어내고 타일을 깨느라 피땀 흘린 철거팀, 벽면과 바닥을 깨부수는 동안 날린 가루가 집안을 뒤덮어 저녁내 청소를 해야 했지만.

  한족 출신의 중국인 보조와 소통하기 위해 중국어를 익히고 있다는 타일 담당자는 작업 내내 스마트폰으로 중국 노래를 들었다. 20포대 분량의 모래를 시멘트와 섞어가며 작업을 했는데 바닥 작업을 할 때는 예고 없이 아파트 복도에 모래와 시멘트를 포대채로 들이붓고 섞어서 나를 기함하게 했지만. 천정에 판넬 시공을 하는 대형 공사판만 다닌다는 두 청년은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청소는 안 해요. 라고 말했다.

  엄청난 양의 미세 판넬 가루를 우리 집과 아파트 계단에 선물처럼 남기고 가버려서 미웠다. 도기, 집기류 시공팀의 수고로움도 잊을 수 없다. 고작 한 평에 불과한 욕실 한 칸도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이 함께 일해야 완성되었다. 몰랐었고 관심 밖이었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영역.

  대충 머리 굴리며 사업 수단으로 일을 해치우는 사람들 말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정당하게 가져갈 수 있을까? 더불어 그들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을까? 학벌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사회는 가능할까?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이루어질까? 나의 욕실 공사 후일담은 이런 질문들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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