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12

 

요즘 제주의 농촌은 한창 마늘 파종 중이다. 농촌 들녘에서 일하는 수많은 할머니들을 처음 보았을 때 참 놀랐다. 한창 마늘재배 농가가 늘었을 때는 서귀포시 대정읍에만 하루 3천명의 할머니들이 제주도 전역에서 몰렸다고 한다. 적게는 10명 인원의 승합차에서부터 많게는 20명을 실어 나르는 소형 버스까지 수많은 차량이 아침, 저녁으로 할머니들을 실어 나른다. 점심과 중참은 현장에서 해결하게 되는데 버스에 실린 솥과 집기류를 내려 길가에서 음식을 만들고 길가에서 먹는다. 쉴 틈도 없이 다시 일을 하여 받는 일당이 8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여기엔 점심과 간식비까지 뗀다. 뙤약볕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하면 청년들도 힘들텐데 70, 80대 노인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제주는 마늘의 대표적인 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수확되다보니 다른 지역보다 가격이 좋은 편이고 단단하고 매워서 품질도 좋다. 특히 내가 일하고 있는 대정지역은 제주에서도 마늘로 유명하며 마늘재배를 통해 농가소득이 많이 늘어났다. 하우스 등 시설재배를 해야 하는 고급 과일과는 달리 넓은 밭과 인력(인건비)만 있으면 어려움 없이 마늘을 재배할 수 있다.

마늘을 수확하는 봄과 파종하는 늦여름에 밭을 가득 메운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저 밭의 마늘은 누가 심고 누가 수확할까?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또 다음 세대의 할머니들이 저렇게 억척스러운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주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육지에서는 이미 보급이 시작된 마늘 파종, 수확기계가 대체할 것인가.

몇 년 전 제주 마늘 농사의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늘전용 기계가 소개된 적이 있다. 지역의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지만 내 주위에 이 기계를 도입했다는 농부를 만난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유인즉슨 제주는 화산섬이라 밭에 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더 생각해보면 과연 돌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몇 년 동안 농협의 마늘 수매가가 높아서 인건비를 감당하고도 충분히 이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마늘파종기가 기계파종과 인력파종을 비교하며 시간절약, 인건비절약을 광고로 내세웠지만 결국 농장주인 농부는 사람을 택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농업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또 줄고 있다. 산업화 시기 도시로 많은 인력들이 빠져나가다 보니 농부는 줄었고 또 늙어가고 있다. 그 사이 농지도 상당수가 개발되었고 줄어든 농지를 더 줄어든 농부들이 경작하려다 보니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되었다. 정부는 이를 농업의 경쟁력이라 말했고 또 효율화라고 말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농업은 얼마나 효율화를 이루었고 농부는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들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모든 근거나 데이터를 떠나 농부가 행복했다면 농업인구가 늘었을 것이다. 저 들판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계농들이 저절로 늘어서 아버지의 생업을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어떤 직업이든 대가 끊기면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드론이 농사를 짓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3D프린터와 자동화 기술, 정보통신혁명이 농업의 기계화를 수 십년은 앞당길 것이다. 경쟁력과 효율성을 근거로 한 농업의 기계화가 농업의 공장생산으로 이어지고, 농부와 수 천년 이어져온 농업의 전통기술을 없애지나 않을까?

며칠 전 한 로컬푸드 워크숍의 강사는 위의 질문에 전전긍긍하다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농업은 인간의 경작본능으로 인해 절대 100% 기계화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농업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또 응전하며 만들어낸 역사이자 문화이다. 삶의 양식이자 뿌리이기에 기계와는 별개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산업의 관점이 아니라 문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농업만한 보고가 없다. 전승되어야 할 우리 사회의 유산으로 보면 늙은 농부를 대체할 것은 젊은 농부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기계에 투자할 기술과 자본이 있다면 젊은 농부의 행복을 위해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홍창욱 / 무릉외갓집 실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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