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 / 여성학자

"이거 무슨 냄새예요?

올레길을 걷기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영국에서 온 교포가 물었다.

“무슨 냄새요?”

길동무로 동행하던 서귀포 주민은 살짝 당황했다. 자신의 코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 혹시 악취라도 맡은 것일까? 그렇다면 서귀포에 대한 이미지가 시작부터 아주 나쁘게 새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아닌가.

“글쎄요, 나도 정체는 잘 모르겠는데.....”

본인도 딱 꼬집어 말하지 못하니 더 난감한데, 다행히 그의 표정이 밝아 길동무는 살짝 마음을 놓았다.

예정된 코스를 거의 다 걸었을 무렵이었다.

“아, 알았다. 이거 공기 냄새예요. 신선한 공기 냄새네요. 몇 십년만에 다시 맡아보네요.”

그가 어찌나 감격스러워하는지 길동무 눈에는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영국하면 런던포그(London Fog)라고 안개 낀 날이 많으니 이런 공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이만이 아니었다. 15개 나라에서 온 27명의 여성들이 한결같이 서귀포의 맑은 공기에 엄지 척!이었다. 또한 길과 수평선을 지금 이대로 놔둔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다고 흥분해서 강조했다.

한민족 여성 네트 워크(KOWIN: Korean Woman International Network)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 여성들의 연대체이다. 2001년부터 매년 여성가족부 초청으로 모국을 방문해 코윈대회를 열고 있는데 작년에는 제주가 유치, 중문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수백명이 모였었다. 이를 계기로 제주를 알게 된 코윈의 지역 리더들이 올해 제주도청의 초청으로 다시 제주를 찾은 것이다. 이름하여, 교류행사. 곧 이들을 통해 전 세계에 제주를 알리고 경제, 문화,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행사였다.

“작년에 제주에 왔다가 삼다수를 알게 되어 제가 매년 삼다수를 수입해요. 이제 필리핀에서도 삼다수 먹어요.”

필리핀에서 유통사업을 하는 코윈 리더 신해숙씨의 말에 과테말라 김혜경씨가 거들었다.

“과테말라에서도 삼다수 먹어요.”

알면 사랑하게 된다더니 과연 그랬다. 공기 이야기, 물 이야기에 이어 이들은 제주에 대한 기대를 한껏 풀어놓았다.

“길이랑 수평선은 지금 이대로 놔둬야 해요. 서귀포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어요. 우리도 외국의 좋다는 곳 꽤나 다녀본 사람들이지만 여기는 지금이라도 알려지기만 하면 외국에서들 몰려 올 만해요.”

“공항에서 막 내렸을 때는 솔직히 왜 제주에 왔나 싶었어요. 도시특성이 없이 높은 건물들이 쫙 늘어선 것을 보면서 국적불명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서귀포는 다르네요.”

“서귀포는 높은 건물을 이제 스톱해야 돼요.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건물을 짓지 못하게 착한 규제를 해야 돼요. 선진국들은 이미 다 그렇게 해서 자기나라의 도시 특성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규제가 무조건 다 나쁘다는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도시특성! 그렇다. 나라마다 다 특성이 있어서 그걸 보러 가는 게 관광이다. 스페인은 가우디의 건축물이 특성이고, 샌프란 시스코는 도시의 아름다운 색채가 특성이다. 샌프란 시스코라면 동성애자들의 천국으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가 확고한 곳임에도 건물 페인팅에 색깔규제를 하고 있다.

제주의 특성이라면 단연 돌담이다. 서귀포의 특성은 경사지형에 가지런한 낮은 건물들이 앞바다의 섬 삼형제를 내려다보고 뒤로는 한라산을 걸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곧 배산 임수(背山臨水)가 주는 평화로움일 것이다. 그 평화 속에서 사람들은 힐링된다.

“외국은 자연을 다 망쳐놓고 후회하는 경험을 이미 했어요. 자연만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몰라요. 그래서 인공적으로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데 그게 계산 착오예요. 자연만큼 위대한 가치는 없어요.”

사실, 우리도 후회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원도심 살리기가 위기감에 대한 증거 아닌가.

“시민들도 나서야 돼요. 외국은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공공의 것으로 사들이기 위해 시민들이 돈을 절반 모아놓고 정부에게 나머지 절반을 구입하라고 압력을 넣어요, 성공확률이 높죠.”

마치 서귀포라는 이름의 애기 하나를 놓고 어떻게 하면 잘 키울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 같았다.

“내년에 꼭 다시 올꺼예요. 그때까지 이 공기, 이 수평선, 이 길 다 그대로 킵(keep)해 놓아 주세요.”

“서귀포가 양주예요? 킵해 놓게?”

“양주 맞아. 향기롭지, 마시면 몸이 이완되고 기분 좋지, 딱 양주네 ”

헤어지면서 하는 인사말에 깔깔 웃었다.

이제 막 서귀포와 사랑을 시작한 27인의 여성들, 이 사랑을 킵하려면 무엇부터 해야할까? 사랑은 시작하기 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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