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13

제주올레 10년 감사 포토존에서 서명숙 이사장과 안은주 사무국장이 잔치에 찾아온 사람들과 재미있게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 4촌 언니가 남원읍 위미리로 이사 왔어”

“거기가 어딘데?”

“5코스!”

“경치는 좋겠다 ”

육지에서 온 듯한 두 여자가 버스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나는 쿡 웃고 말았다. 서귀포 이주 4년차인 나도 주소를 듣고 감을 잡지 못하면, 몇 코스냐고 물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놀러온 친지들이 나에게 서귀포로 이사와서 어디에 사냐고 물을 때 월드컵 경기장, 서귀포 경찰서, 고근산을 말해도 눈만 껌벅이던 사람들이 <7-1> 코스 근처라고 말하면 금새 아하!하고 알아듣는다. 올레지도 한 장으로 머릿속의 지피에스가 작동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이었다. 제주 올레가 가문잔치를 열었다. 10년 생일잔치였다. 제주올레 이사장과 사무국장이 기자출신이더니 가문잔치에는 떡만 있는 게 아니라 책도 있었다. 나의 제주 올레, 길 위에서 새로운 삶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은 책에는 18사람이 쓴 글이 담겨 있었다.

이별여행으로 올레에 왔다가 평생의 짝으로 반전을 이룬 러브스토리, 병마에 좌절하던 아버지가 올레에서 삶의 의지를 찾은 휴먼감동스토리, 425㎞ 올레 길에서 자신과 화해한 치유스토리, 친구들끼리 올레를 회춘의 명약으로 삼은 깔깔 스토리, 어린 자녀들과 올레를 함께 걷다 돈보다 추억을 위해 바쁜 도시의 삶을 접고 제주로 이주한 개념 있는 가족스토리 등이 길의 존재 의미를 증언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제주는 어떤 존재일까? 마음의 고향까지는 몰라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사진첩에 남는 추억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인생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올레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자신들의 선택이었지만 올레를 만들고 지키고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단법인 제주 올레는 제주도를 걸어서 여행하는 장거리 도보 여행길 제주 올레를 만들고 운영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길을 걷는 사람이 행복한 길, 길 위에 사는 지역민이 행복한 길, 길을 내어준 자연이 행복한 길을 목표로 놀멍 쉬멍 걸으멍 고치 가는 길(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함께 가는 길)을 만들어 갑니다. 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늘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마을 자원을 활용한 상픔 및 프로그램 개발, 공정여행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등을 진행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도보 여행길과 교류하며 제주 올레의 철학과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합니다.”(나의 제주 올레 날개글 중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하나가 10년 동안 공적인 운영지원 한 푼 없이 자가 펌프질로 이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나는 여성학자로서 사단법인 제주 올레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품어 안으며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리더십, 바로 어머니를 닮은 모성적 리더십이다.

하루는 어떤 분이 사무실로 찾아와 막 화를 내는 거예요. 올레 때문에 집값이 너무 올라서 자기 어머니께 집을 사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화를 받아드릴 수밖에요

올레 사무실도 년세를 감당 못해 이삿짐을 꾸릴 때였다.

“식당, 숙소, 택시, 술, 음식, 물건, 올레라는 글자가 붙은 것은 다 사단법인 제주 올레 재산인줄 아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그 돈 다 벌어 뭐하냐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기도 지쳐 이젠 그냥 웃어요.”

올레 사무실 운영 경비는 후원금과 기념품 판매로 충당한다. 작년에 제집으로 마련한 올레센터의 계단에 깨알같이 적힌 이름은 담돌간세(건축후원자)들이다.

“올레꾼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사기꾼, 노름꾼, 이런 예를 들며 왜 꾼이라고 했냐고, 꾼이라는 말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닌데...”

나라의 일꾼, 살림꾼, 꾼은 전문가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 아닌가.

그러나 동네 심방 안 알아준다는 속담도 이젠 옛말이다.

“이중섭 거리가 살아났잖아요. 매일올레시장은 지금 자리가 안 나서 못 들어가요.”

“야, 내 고향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로구나, 찾아오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고, 막 자부심이 생겼어요.”

“북군에 태어난 사람 중에는 서귀포 구경 안 와 보고 죽은 사람도 있었주게. 올레 생겨난 제주 사람들끼리도 막 돌아댕기고 아주 좋수다.”

자신의 퇴직금을 털어 길을 내기 시작한 서명숙 이사장, 좋은 직장 보장된 미래를 육지에 두고 월급도 없는 일에 보람과 가치를 찾아 의기투합한 안은주 사무국장, 이수진 디자인실장, 박선경 퐁낭 대표, 그리고 제주 사나이 송수호 탐사대장, 이들이 보여준 헌신의 리더십이 밑거름이 되어 이루어낸 10년의 성과가 아니겠는가. 응원과 함께 앞으로의 10년을 또 기대한다,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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