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14

“차롱도시락 먹어봤어? 한번 맛볼려구 신청했더니 할 때마다 마감되었다고 하더라구”

“게메, 그게 보통 인기가 아니라네”

“ 어릴 적에 우리 집에도 차롱이 많았었는데...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다 없어졌네”

“게메, 그 흔하던 차롱이 이렇게 귀한 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는 동네 미장원에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를 내릴 만큼 화제가 된 차롱, 내가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작년 여름무렵이었다.

호근동에 사는 지인 한 사람이 자기네 마을 뒷산이 정말 멋지다고 어찌나 칭찬을 하는지 구경하러 나섰다.

“치유의 숲”

차를 타고 한라산을 향해 한참 올라간 지점에 이렇게 써 있었다. 숲해설사와 산림치유지도사라는 사람들이 숲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숲을 걷고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차롱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어요.”

차롱? 처음 듣는 단어였다. 차롱! 깊은 산속 옹달샘, 그 위에 떨어지는 아주 맑은 물 한방울, 그 소리가 혹시 차롱 아니었을까. 차롱! 차롱! 차롱! 어쩌면 이렇게 이쁜 말이 있단 말인가. 차롱의 실물을 보고 나는 더 홀딱 반하고 말았다.

아주 가느다란 대나무결이 촘촘하고 가지런히 이어지면서 뜨개질을 해놓은 듯, 단정하면서 그 야무진 몸매라니! 차롱은 그렇게 내게 새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차롱을 하나 구해서 곁에 둬야겠어. 갑자기 밀려온 차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미장원을 나오자마자 치유의 숲을 향했다. 혹시 그 차롱을 하나 곁에 둘 방법은 없을까? 오일장이나 여느 토산품 가게에 가도 차롱을 구할 수 있을터이지만 숲에서 처음 만났던 그 차롱이라야만 내게는 차롱일 거 같았다.  

마침 사무실에는 낯익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내 입에서 차롱이라는 단어가 나가기 무섭게 그는 핸드폰을 열심히 터치했다.

“보세요. 우리 차롱 도시락이 특허를 땄어요“

핸드폰 안에는 차롱이 오롯이 들어 있었고, 차롱안에는 톳주먹밥, 해물산적, 야채꼬지, 한라봉, 이른바 로컬푸드, 슬로우 푸드가 옹기종기 한가득 모여있었다. 이건 도시락이 아니라 한폭의 그림이었다.

“아, 대단하네요”

내 입에서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죠? 처음에는 그깟 차롱이 관광객들에게 무슨 큰 매력이 있겠냐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이게 바로 우리 제주 전통이니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어릴 적에 어른들이 산에 일하러 갈 때 차롱에다 밥을 싸가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으면 바람이 불때마다 차롱의 밥이 그네를 타면서.....”

와하하하, 그네 타는 차롱이라, 차롱이 마치 만화주인공처럼 방울달린 긴 삼각모자를 쓰고 밥을 가슴에 품은 채 흔들리는 영상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재미있기까지한 이 차롱을 내 반드시 곁에 두고야 말리라.

“근데 이것 좀 보세요. 마을 사람들이 3개월간 배워서 만든 거예요.”

허벅을 닮은 앙증맞게 작은 바구니였다.

“누구한테 배워요?”

“호근마을에 차롱 만드시는 할아버지가 계세요. 그분께 배워요”

차롱 할아버지! 이거였구나. 내가 그토록 차롱에 매료된 데에는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오늘도 그것을 엮어내는 어떤 ‘정신’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프랑스에 피노키오를 만든 목수할아버지 제페트가 있었던 것처럼 제주에는 그네 타는 차롱을 만들어 낸 김희창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거였다.

갑자기 차롱을 사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래, 차롱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어야 해.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도시락이 편리한 게 아니라 두고두고 쓰고 또 쓰는 그래서 나에게 익숙한 것이 진짜 편리한 거지. 환경홀몬 걱정 없는 청청 깔끔 대나무, 음식을 담자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한 가닥 한 가닥 엮어가노라면 차롱에 담고 싶은 맛난 음식들, 머릿속에 요리책이 몇 권이나 펼쳐질까? 차롱을 들고 어디로 놀러 갈까? 오름과 쪽빛 바닷가, 제주 비경 지도가 펼쳐진다. 차롱을 펼쳤을 때 감탄하며 손뼉칠 동행자는 누구일까? 세월과 더불이 이 차롱에는 추억과 사랑과 행복이 차곡차곡 쌓여 내 인생의 배부른 도시락이 되어주겠지. 살이 부러지고 튕겨나오고 헐었을 지라도 내게는 폐물廢物이 아니라 패물貝物일거야.

차롱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피노키오보다 더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지 몰라. 김희창 장인이 만든 차롱들이 세계로 흩어져 환경운동을 하고, 밥 나눔을 하고, 지구를 지키고 평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스토리, 제주의 전통이 오래된 미래라는 걸 보여주는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