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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서귀포의 주인입니까?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16
서귀포신문 | 승인 2017.10.12 11:01
형제섬이 보이는 올레코스(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추석 연휴내내 올레길을 걸었다. 가을방학이라 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보니 제주로 여행오는 친지들이 많아 매일 파트너를 교체하며 올레코스를 섭렵했다. 중국단체관광객에 치이기 싫어서 한동안 제주를 기피했다는 친구들도 모처럼 제주다운 제주를 즐기겠다며 찾아왔으니 나로서는 에브리데이 접대걷기였다.

어느 올레코스를 가든 걷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 놀랐다. 추석문화가 이렇게 바뀌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중의 압권은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추석차례는 남자들끼리 지내라 하고 여자들끼리 싹 제주로 놀러온 팀이었다. 가족유니폼 티셔츠 뒤에는 큰딸 00, 작은 딸 ** 라고 적혀있었다. 여기서 퀴즈! 그러면 팔순의 당사자인 어머니 티셔츠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요?

다음 중에서 골라보세요.

1. 오늘의 주인공 000, 2. 흰머리 소녀 000, 3. 어머니 사랑해요, 4. 팔순, 실화냐?

정답은 4번!

‘팔순 실화냐’를 보며 빵 터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얘들아, 우리도 내년에는 ‘육십, 실화냐?’ 단체티 입고 걷는 거 어때?”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의 말에 또 한번 빵 터졌다.

아무튼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니 좋았다. 날씨가 화창해서, 또는 흐리거나 비가 와서, 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매일매일이 좋았다.

“야, 기가 막히다”

몇일간 올레길을 걸으며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오해마시라. 당연히 절경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려니 하겠지만 네버 네버, 절대 아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바다풍경을 꽉 막아버릴 수가 있냐?”

서건도 근처를 지날 때였다.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옆으로 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중간에 틈이 조금도 없는 건물은 바다를 못보게 하려고 가로막은 콘크리트 장벽에 다름 아니었다. 일층만이라도 띄엄띄엄 작은 공간을 내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어머나, 기막혀라”

외국여행을 좀 경험한 친구들은 걸으면서 ‘기막혀’ 빈도가 더했다. 그때마다 속이 뜨끔뜨금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와아, 저 물빛 좀 봐. 내가 이 길을 여러 번 걸었지만 오늘 물빛은 청록, 보기 드문 색이다. 늬들 오늘 복 받은 줄 알고 여기 좀 쉬었다 가자”

대포항을 지나 컨벤션으로 가는 길, 나는 너스레를 떨며 친구들을 바닷가에 주저앉혔다. 일행들의 예민함을 가라앉힐 요량이었지만 바닷물빛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아름다웠다.

“이 소나무 좀 봐. 이리 몸통이 가느다란데 어떻게 저리 높이 올라갔을까? 신기하네”

“소나무 너머로 바다를 보니 정말 아름답다, 이게 제주 맛이야”

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이 순간을 사진에 담아 서귀포의 좋은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나는 마침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중년부부 올레꾼을 불러세웠다.

“아이고, 명당에 앉으셨네요”

그 남편은 붙힘성 있게 각도를 달리하여 여러장을 찍으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복병일 줄이야.

“여기도 언제 건물이 들어설지 모르니 찍어놓긴 해야겠네요”

“최근 이삼년 사이에 바짝 서귀포가 망가지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가면 큰일인데....”

답례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에 포즈를 취하면서 부부가 한마디씩 하는 말에 친구들의 ‘기막혀’가 다시 발동하면서 좋았던 분위기가 ‘큰일났다’로 싹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누가 제주에 오겠어. 안 온다구. 7대 경관이니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니 해도 딸랑 그것만 있으면 한번 온 사람들이 또 오진 않지. 관광으로 먹고 살려면 크게 보고 멀리 봐야 한다구. 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전반적인 분위기야,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쫙 펼쳐지는 그런 곳 말야. 적어도 올레구간만이라도 그게 지켜지면 좋겠어.”

“자기네만 살겠다고 풍광 가리는 건물 짓는 사람들은 제주사람 아닐꺼라. 제주가 핫하다니까 투자했다가 인기 시들하면 떠나버리는, 흉물스런 콘크리트 덩어리만 남기고.... 제주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하는데...”

이들의 우려와 비판을 어찌 탓하거나 무시할 수 있으랴. 사랑하기 때문에 안타까워서 터져나오는 한숨인 것을. 이 부부만 해도 전라도에 살면서 십수년 전부터 매년 한달씩 제주에 와서 머물며 자연의 숨결을 만끽하고 돌아가는 ‘완전 제주 사랑 남녀’였다.

추석연휴가 끝나고 모두들 신발끈을 다시 맨다는 지금, 나도 신발끈을 다시 매고자 한다.

“내가 진정 제주도민이요, 서귀포의 주인이라면 제주다움, 서귀포다움을 지키는 일에 나서야한다. 공무원들이 왜 저런 건축허가를 내주냐고 화내기보다 주인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내야 한다. 서귀포다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 가령 마을개발위원회와 쌍으로 마을보존위원회를 만드는 일부터! ”

서귀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저한테 연락주세요!!!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귀포신문  sgp19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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