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 서귀포문화원 문화대학장·제주언론인클럽 상임부회장

  서귀포 토평리 네거리 한 편에 ‘석주명 기념비’가 흉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오래전에 공동으로 건립한 것이다. 곤충학자인 석주명 선생은 생물 중에서도 특히 ‘나비 박사’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 고장에서는 제주도에 관한 그의 학술적 공헌을 높이 평가해, ‘제주학(學)의 선구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제주인들이 미처 발굴하거나 조사하지 못했던 미개척 분야에서 많은 연구 업적과 귀중한 자료들을 남겼다.

  그렇다면 석주명(石宙明), 그는 누구인가. 석주명은 ‘경술(1910년)의 국치’ 2년 전인 1908년 11월(음력 9월), 평안남도 평양(대동문 인근 이문리)에서 출생했다. 열네 살에 당시 민족교육의 대표적 학교인 기독교 계통 숭실고보에 입학했으나 동맹휴학으로 인해 중퇴를 하고, 개성의 송도고보로 전학해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가고시마(鹿兒島)고등농림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귀국해서는 모교인 송도고보에 박물(博物) 교원으로 임용되어, 본격적인 생물학 관련 연구에 몰입한다. 생물학에서도 곤충학, 그 중에서도 ‘나비’ 탐구에 몰두해 교사 재직 12년 동안에 무려 79편의 논문을 학계에 발표했다.

  1943년 4월, 그는 서귀포 토평리에 신설된 ‘경성제국대학부속 생약연구소제주도시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섬 지역 나비를 연구할 열망으로, 아무도 전근을 꺼려하는 벽지(僻地)를 자원한 것이다. 석주명 선생과 제주도와의 인연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생약연구소시험장 근무는 우리 제주도로서는 천행(天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제주도에서 생활한 기간이 불과 2년여밖에 안되는데도, 그의 제주도 관련 연구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엄청난 학문적 위업을 달성했기 까닭이다. 더욱이 제주도방언 연구는 고어(古語) 연구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과의 언어교류 관계에서도 대단히 귀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업적을 이뤄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제주도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타고난 천재적 소양,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제주도의 큰 은인인 석주명 선생은 1950년 6.25전쟁 중에 애통하게도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석 선생의 제주관련 연구 결과는 모두 여섯 권의 ‘제주도총서’로 간행되었다. ‘제주도방언집’, ‘제주도의 생명조사서-제주도인구론’, ‘제주도관계문헌집’ 등 세 권은 그의 생전에 서울신문사에서 출판했다. ‘제주도수필-제주도의 자연과 인문’, ‘제주도 곤충상’, ‘제주도자료집’  등 나머지 세 권은 사후에 누이동생인 석주선 교수에 의해 발간되었다.

  1947년 처음 발행되었던 ‘제주도방언집’은 2008년에 이르러, 제주시내 제주문화사(경신인쇄)가 300부 한정판으로 재판했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서귀포문화원이 석주명의 ‘제주도총서’ 6권 전부를 재발행·배포함으로써, 제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서귀포시는 석주명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석주명기념관’과 ‘석주명공원’, ‘석주명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귀포시는 ‘석주명선생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이미 구성해 놓고 있으며,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거쳐 오는 2019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러한 서귀포시의 ‘석주명기념사업’은, 산남지역의 문화유산을 계승·보전한다는 의미에서도 크게 칭송받을 일이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니면서도 제주도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열성으로 제주학 연구의 선도적 역할을 한 석주명 선생을, 우리 제주인은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터이다. 석주명 선생이 가신지 이달 10월로 67주년이 된다. 제주학의 선구자인 석 선생에 대한 감사와 아울러, 이 세상에서는 비록 짧은 생(生)이었지만 저 세상에서는 제주사랑의 정신으로 제주인과 늘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