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의 문화사-8

서귀포 ‘면형의 집’에는 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것은 프랑스 출신의 에밀 타케 신부가 심어 놓은 것이다. 이 나무는 제주 감귤산업의 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에 르네상스의 유산이 스며있다는 생각은 필자 혼자만의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상상이라고 해도 굳이 그런 반론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식물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딘가에 우리의 상상이 자리할 곳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큰 자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흔히 고대의 재탄생, 혹은 인문주의의 부활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깨달음은 인간이라는 대상에만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 영역을 넘어서 인간을 둘러싼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인문주의 정신은 식물 연구에도 반영되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비밀의 정원을 열어 식물 세계를 탐험하려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장원을 가진 귀족들, 자연계를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도서관을 관장해 온 가톨릭 수사들이 중세기까지 금지되어 왔던 자연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연계에 대한 연구가 더는 죄악이 아니라는, 중세의 억압이 어느 정도 희석된 공기를 호흡하면서 자연계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탐구하려는 르네상스시대의 욕망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중세 시대의 스콜라철학과 신학에 반발했던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인간적인 시대를 다시금 동경하면서 과거의 억압된 시대를 떨쳐내려는 듯했다. 인문주의자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인간과 살아있는 세계와의 연관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하느님에 대한 복종에서 우주에 대한 탐구로, 그리고 영역을 더욱 구체화해 이제는 자연계에 대한 탐구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르네상스인들의 욕망은 동식물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고 이에 따라 전 세계의 귤 문화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 이슬람의 이동으로 전파된 귤나무가 이번에는 예수회의 전도 지역에 따라 세계 각지로 전파되어 감귤지대를 확산시킨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기의 교차로를 지나던 인문주의자들은 한편으로 자연을 성경을 해석하는 대상이나 신의 은총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그 자체의 신비와 놀라움을 이해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으로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자연을 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기는 자연탐구에 있어 해방의 시기였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기로 다가왔다. 이제 식물 세계는 단순한 피조물의 세계가 아닌 식물 자체의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은밀하게 탐구의 충동을 일으키는 비밀의 정원이 되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풀 (1502).

이 그림을 보며 누가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이라 말할까? 하지만 뒤러의 이 그림은 세밀화의 출발로 자주 얘기된다. 식물에 대한 관찰과 호기심은 세밀화와 작가의 내면을 담은 풍경화를 곧잘 그려내게 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호기심이 시대의 분위기였던 만큼 16세기에는 식물을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충분했다. 이 세기에는 식물원이 세워지고 식물표본집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토 브룬펠스는『식물의 생태도감 Herbarum vavae eicones』(1530)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은 사라져가는 과학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고대의 약초에 대한 기술을 배제하고 실물 같은 그림을 수록할 것을 요구했다. 본격적인 식물학 연구가 싹트는 순간이었다.

글․백금숙 박사(제주대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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