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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 오니 노래가 절로 나오더라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19.
서귀포신문 | 승인 2017.11.03 08:58

“밀감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뿐 비바리들, 콧노래도 흥겨웁게 미역따고 밀감을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30년 지기 친구가 육지에서 서귀포로 찾아와 함께 바닷가 길을 걷는데 내 입에서 이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어머, 네가 노래를 다 하는구나. 맨날 남들한테 노래시키는 거만 봤는데 직접 노래를 하는 거 보니까 신기하다, 얘”

친구가 쌍커풀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하는 바람에 약간 무안해졌다.

“네가 찾아와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니 기분이 좋아서 안 그러냐”

슬쩍 말을 돌렸지만 사실, 요즘 내 안에서 노래가 터져 나오고 있다. 누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바느질을 배운다고 하니까 내입에서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라는 노래가 나오고, 다른 누가 가을이 왔다고 하는 말에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는 노래를 불러 상대를 웃게 만들었다. 내 안에 살고 있던 노래의 신이 이렇게 강림하실 줄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아니 내 안에 노래의 신이 살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일이다.

노래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행복하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서귀포에 살게 된 덕이다. 내게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년의 딸아이가 있는데 도시에서는 이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도시의 살풍경을 벗어나자면 어디든 가야 하는데 사람이 많고 차가 밀리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고, 차를 운전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인내심이 없는 아이는 소리를 지르거나 내리겠다고 떼를 쓰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어미이자 보호자인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겠는가. 그런데 서귀포는 가까이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널린데다가 웬만한 데는 걸어갈 수 있고 차를 운전해도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대함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한번은 음식점에 갔는데, 아이가 한발 먼저 뛰어들어가더니 갑자기 주인아저씨의 손을 잡아 음료수 냉장고로 끌고 갔다(모시고 간 것이 아니라 강제로 끌고 간 것이다). 목은 마르고 자기가 직접 꺼내면 안 되는 거라고 배운 건 있고, 급하니까 그리한 것이었다. 당황한 내가 다가가 사과하자 그 삼촌은 씩 웃으며 “아이가 잘 생긴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난 나를 끄서 간 거 닮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여유와 유머에 감동의 눈물이 핑!

매일시장에 아이가 가면 가게 삼촌들이 왔냐며 반겨주시고, 돈 내면 거스름돈 받아가라고 교육도 시켜주시고, 어떤 때는 살찌니까 한 개만 사라고 타일러주시고, 가끔 내가 혼자 가면 ‘똘네미는 어떵하냐’고 챙겨 물어주신다. 내 마음에 평화가 오면서 내가 행복해지니 노래가 저절로 나오게 된 것이다.

“똘레랑스”

프랑스어로, 인내심, 관대함이라는 뜻이다. 책<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수>를 쓴 홍세화 선생은 프랑스 사람들이 갖는 관대함이 프랑스를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나라, 사람들이 행복한 선진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국적, 민족, 성별, 나이, 지역, 외모, 장애, 이런 저런 차이가 있어도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론 다소간의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그 차이를 견뎌내는 참을성과 관대함이 있다면 어디라도, 누구라도 마음이 ‘조들지’ 않으면서 평화롭고 행복할 것은 당연하다.

요즘 내가 즐겨 쓰는 모자가 하나 있는데 빵모자 스타일에 뿔이 두 개 달렸다. 몽골올레에 갔다가 기념으로 산 것인데 날이 추워지면서 보온용으로 자주 쓰고 있다. 이걸 쓰고 다녀보면 사람들이 낯선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저절로 ‘설문조사’가 된다. 내가 꼽는 최고의 반응은 시장입구에서 좌판행상을 하시는 삼촌들에게서 나왔다. 신문지 위에 펼쳐놓은 푸성귀들이 모두 다해서 10만원도 넘지 않아 보이는데 표정들은 어찌나 푸근한지,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구경만 하며 그 앞을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면서 “그 모자 재미지다”고 활짝 웃어주셨다. 마침 나는 육지에서 온 미술하는 후배와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가 “와, 저분들 살아있네요” 하면서 감탄했다. 돈걱정과 삶에 찌들어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연극배우들처럼 자신의 상황앞에서 여유와 공감의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제주 민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선주민과 이주민들의 갈등이 제주도의 큰 숙제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따뜻한 인정을 유전자로 물려받는 민초들의 힘을 나는 믿는다. 또 노래가 나온다. 윤항기씨가 부른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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